감정의 파고波高
12시쯤 갑작스럽게 주치의가 방문했다. 정말 갑작스럽게... 아침 회진 때 들리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순간 여러 생각이 찰나에 교차했다. 첫 말이 'CT'로 시작하자, 좋지 않은 상황임을 직감했다. 간에 농양처럼 보이던 것이 종양으로 의심되고, 전이가 된 이상 수술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낙담했다. 병과 사가 생의 연속이며,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솜털처럼 가벼워졌다. 제발 저 멀리 날아가 나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랬다.
주치의는 종양내과로 옮겨야 한다며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이곳의 사람들은 할 말만 하는 것을 훈련받은 듯했다. 그리고 직위가 올라갈수록, ...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책임이 클수록 직답을 피했다. 하나는 더 알아보고 알려준다는 것이었고, 다른 방법은 그냥 끝을 흐리는 것이었다. 환자나 보호자는 막막하다.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어보면 위와 같은 방식의 대화가 이어져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다음 질문을 만들기가 매우 애매하기 때문이다. 미쳐 물어보지 못한 것과 모호한 것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주로 카페와 블로그에서 그 답을 찾았다.
검색해보면 의사 쪽 게시물도 접할 수 있었다. 의사는 우선적으로 신뢰받기를 원했다. 그동안 익힌 지식과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가장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부분은 동의했다. 또한 신뢰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책임감이면 맡겨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종 대부분의 판단에서 환자 측 의견 수렴 과정이 생략되었다. 수술 동의 과정에서도 찬찬히 설명을 들었지만, 말의 빠르기나 표정에서 피곤함이 느껴졌다. 과정이 피곤했다는 것이 아니라 익히 들어온 근무 환경에 따른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시간은 충분히 주어졌지만 질문의 단어 선정이 매우 조심스러웠고, 머뭇거리게 되었다. 수술 동의 의사意思를 묻는 형식은 갖췄지만, 우린 동등한 참여자가 아니었다.(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실만 주관적?으로 기록한다. 충분한.. 정말 만족할만한 이해를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던지, 환자 측에서 사전 공부를 통해 관련 지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동등한 참여가 가능하다. 물론 서비스 제공자는 품질만큼의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
속상함과 억울함을 숨겼다. 옆에 아버지가 있어서였다.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차라리 생각을 멈추려는 듯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잠을 드는 것인지, 눈만 감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두세 시간을 그렇게 계셨다.
아버지의 삶이 또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수술-항암에서 항암-수술(?)-항암으로 바뀌었다. 2기 예측에서 4기로 확정되었다. 변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감정의 파고가 어지러이 휩쓸었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가졌지만 절망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