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빚
아침에 pet CT를 찍은 후부터 일정이 없었다. 아버지는 못내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수술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투병생활이 기약 없어졌다.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수술을 하더라도 후유증 또는 재발과 전이 등으로 쉽지 않은 과정이 이어질 가능성도 컸다. 그걸 아셨더라도 마음을 추스르기는 힘드셨을 것이다. 일정 없이 시간만 무료하게 흘러갔다. 아버지의 등과 어깨가 그렇게 굽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침대 위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가끔 기척이 나면 누런 눈을 껌벅거릴 뿐이었다.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점심을 조금 드시더니 밥상을 물리셨다. 너무 상심이 크신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말씀은 그러셨다. "나랑 동갑으로 북한 김정일도 죽었고, 삼성 이건희도 죽었다. 그 사람들이 힘이 없어 죽었겠냐, 돈이 없어 죽었겠냐?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상관없다." 그러면서도 또 "그렇게 건강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는데, 내가 이렇게 되다니..."라며 혀끝을 차셨다. 내적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낙담하실만하셨다.
수술 치료가 어렵다면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항암과 자연치료뿐이다. 담도 부위는 동북아시아 쪽에서 발생하는, 세계적으로는 희귀암이었다. 임상사례가 적고, 사용 가능한 화학 치료제 역시 제한적이었다. 항암치료를 크게 기대해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자연치료를 하기에는 두려움이 컸다. '이게 정말 될까'라는 의심이 되는 순간부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철저한 믿음과 고된 생활 습관으로 자가 치료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항암보다 오히려 더 어렵고, 실패 확률이 높다고 하였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목표와 동기가 필요했다. 살아야 할 이유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점심을 드시고 누워계시더니 일어나서 옛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작은 고모 결혼 보낸 이야기, 첫 직장 월급 받은 이야기, 할아버지 투병 이야기. 예전에 들었으려나... 새로웠다. 잠깐이라도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살아오셨는지? 장남으로 느꼈을 무거운 짐을 고모 결혼 보낸 이야기에서 말씀하셨다. 당시 교사 첫 월급이 18,000원이었고, 그 돈을 모아 300,000원으로 고모를 시집보내셨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작은 아버지 결혼 에피소드까지 50년의 세월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평소에는 말씀이 없으시다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안다. 마음속에 담았던 지난날을 아들에게 말하는 것은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아빠가 이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너희들은...' 자산을 정리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기억을 정리하는 것이다.
아버지 손을 꼭 잡아드리지 못했다. 밭일을 하시느라 검게 탄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었으나 마음으로 그쳤다. 어색함이 가로질렀다. 살아오면서 기분이 좋으시면 웃으시며 칭찬해 주셨지만, 온기 있는 말씀을 좀처럼 아끼셨다. 성정도 그렇지만, 지나온 세월과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가정 상황이 이유를 말해준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 앞에 서면 작아진다. 한 번도 친근하게 아버지를 대해본 적이 없었다. 늘 투박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 내가 예전에 아버지가 나에게 주었던 사랑과 희망을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 빚이라면 빚일 수 있다. 마음의 빚. 아버지는 한사코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식에게 피해를 준다며 불쾌한 감정을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하루가 지나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