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여섯째 날

진인사 대천명

by 울타리

아침, 저녁으로 회진 오는 의사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는 듯 불편한 데 없냐고 묻고는 전동(외과 병동에서 종양내과 병동으로 이동) 되려면 대기자가 몇 명 남았다는 소식만 전해줬다. 스스로 왜소해지면 안 된다고 다짐을 했건만, 점점 '변신'의 그레고르처럼 소외되고 버려진 죽음을 맞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제부터 단조롭고, 무료한 생활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절망감이 무료함으로 바뀌었는데도 조급함이 이상하게 사라졌다.

경우의 수를 조합하여 가장 최적의 조건을 찾으려 분주하게 연락하고 알아보았다. 전동되어 입원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면 일차적으로 안심이 되겠지만, 추후 치료가 걱정되었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주 1회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오가는 것은 어려운 것을 넘어 불가능했다. 1~2회 치료를 받고 경과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대기가 길어 전동이 안 되고 퇴원을 하는 경우였다. 우리도 마냥 기다리는 것이 불안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병원 측에서도 오히려 외래가 빠를 수 있다는(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환자 밀어내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말로 퇴원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지역 병원 몇 곳에 예약 차 연락해 본 결과 최소 2주에서 한 달가량 기다려야 했다. '무슨 암환자가 이렇게 많담' 짜증이 났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빽을 쓰거나 떼를 쓸 수도 없었다.

이것이 진인사盡人事였을까?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천명을 기다리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결정 시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혼란스럽다. 각각의 경우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결정에 다다르나 싶던 순간에 처음으로 환원되는 경우가 많아 무한 반복되기도 한다. 다시 간결하게 정리하여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게요."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빅데이터라 하더라도 확률은 확률이다. 반드시 그렇지 않은 블랙스완이 나온다.


어제 오전 내내 이 문제로 답답했다. 누군가는 항암치료의 부정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후유증이며 효과이며... 고생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암이 작아질 가능성은 대략 20%였다. MD 엔더슨의 김의신 박사의 말이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1%의 희망이 있다고 말해도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10%라고 해도 실망을 한다고 했다. 20%의 가능성을 긍정해야 할지, 부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10%가 아니라 20%나 되는 확률이라 기뻐하기에는 생명의 가치가 정말로 컸다.

목이 메더니 참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 생명은 다름 아닌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목숨을 두고 도박과 같은 확률 게임으로 머리가 아팠다. 목덜미를 누군가가 내리누르는 듯했다. 몇 방울의 눈물이 차가운 병원 복도로 떨어졌다. 안간힘을 주고 눈물을 참았다. 나약해지기 싫다기보다는 포기할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급하게 병실을 찾아 들어왔다. 아버지는 누워 계셨다. 아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눈물을 참으며 점심을 챙겨드렸다.


눈물을 흘린 게 잠시여도 효과가 있었나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성이든 감정이든 나를 더 이상 통제하지 않았다. 끝도 없는 경우의 수를 들이대며 혼란스럽게 하지도 않았고, 슬픈 예감이 떠다니며 괴롭히지도 않았다. 그냥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냥... 진정한 대천명待天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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