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9

아버지가 남긴 것

by 울타리

아버지 영정 앞에서 지난날을 떠 올립니다. 25년 전이었나요? 무척이나 추웠던 12월 어느 겨울, 어머니 영정 앞에서 3형제가 나란히 지금처럼 빈소를 지켰습니다. 그때의 공허함이 똑같이 분향실에 울립니다. 짙은 향 냄새가 공간을 채우고, 하얀 국화가 흐드러져도 곡소리 하나 없습니다. 구멍 난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슬픔이 소리 없이 사라집니다. 슬픔을 정화할 거름망조차 구멍이 숭숭 뚫려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기억이 슬픔을 붙잡아 환하게 웃고, 정다웠던 옛모습을 떠올리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25년이 지나도 어머니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남는 것은 아마도 나의 일부가 되어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이든 소멸과정을 겪듯 점차 희미해질 테지만 어머니가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 준 기억, 따뜻한 카스테라를 만들어준 기억,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자랑스럽다며 칭찬해 준 기억은 또렷합니다. 어머니는 내게 부드러운 사랑과 정성 담긴 음식, 자아를 사랑하는 태도를 남겨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게 무엇을 남겨주셨을까요. 고향인 남원 산동면은 어느 마을이나 그렇듯 배산임수의 집성촌입니다. 고남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섬진강의 상류인 요천이 흐릅니다. 봄이 오면 뒷산이 놀이터고 여름이면 강가에 나가 수렵을 합니다. 가을에는 밤과 감이 지천이고 겨울에는 논에 물을 대 썰매를 실컷 탔습니다. 지금 유년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런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와 자연과의 관계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이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즐기는 대상이자 도구였습니다. 풍족을 넘어 각인이 되어 있으니 아버지는 유전적 DNA뿐만 아니라 '자연'이라는 환경적 DNA까지 물려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지독하게 아끼셨습니다. 본인을 위해서는 작은 것 하나 함부로 사는 것이 없었으며, 식사도 늘 소박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아끼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필요할 때는 크게 쓰셨습니다. 퇴직하고 나서는 세계여행을 꾸준하게 다니셨으며, 자식과 지인에게는 후하게 나눠 주셨습니다. 물질에 메이기보다는 정서적 향유에 더 크게 뜻을 두신 것이겠지요. 88년의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야영, 93년의 지리산 세석산장에서 먹었던 라면, 12년의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바라본 밤하늘,... 교토, 로마, 아테네, 쿠스코, 푼타 아레나스 등 수많은 시간과 공간, 그 안에서 누렸던 기억이 모두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입니다. 아낀다고 하여 구두쇠는 아니셨으니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신 것이며, 저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서예를 20년 넘게 쓰셨던가? 퇴직을 하고서는 25년 넘게 선산을 가꾸셨고 평생 시간이 있을 때마다 등산과 여행을 즐기셨습니다. 다방면에 흥미를 갖기보다는 집착이라 할 정도로 한 가지에 정성을 쏟으며 목표한 것을 이루려는 성공지향적인 성격이셨습니다. 때로는 우직하다 비난받기도 했을지언정 끈기와 인내가 오늘날의 아버지를 만든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큰 족적이 남습니다. 정성 들여 가꾸었던 선산에서 후손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소박한 삶의 자세와 자연을 동경하는 태도를 갖추었다면 산은 지상낙원이 될 것입니다. 자급자족의 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조상의 얼이 살아있으며 그 무엇도 배타적인 경계 태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선한 본성이 지극히 순화되어 외부세계의 공격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으며 오로지 본인의 의지대로 희망한 바를 이룰 수 있는 낙원을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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