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여덟째 날

탈출

by 울타리

탈출이라고 해봐야 건물 밖으로 나간 것뿐이다. 신관 7층의 옥상정원을 주로 다니다가 서관으로 옮긴 후 건물 안에만 머물렀다. 복도만 주욱 따라 걷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을 해도 걷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방법을 찾다가 직원에게 물었더니 낮에는 더워서 어려우나 아침, 저녁으로 밖으로 나가 정원 산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당연히 외부 출입이 금지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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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비가 오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산책을 나왔으니... 그래도 그냥 들어가기에는 아까웠다. 기다랗게 연결된 처마를 따라 병원 끝까지 걸었다. 직렬로 세워진 세 빌딩(서관, 동관, 신관)의 끝에서 끝까지 거리가 대략 300m는 넘어 보였다. 두세 번은 오고 간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시간이 좋았다. 아버지는 힘이 드시는지 들어가자고 하였으나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며 한 번만 더 걷자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를 앞에 두고 걷고 있으니 함께 떠난 여행이 떠올랐다. 9년 전 칠순잔치 대신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관광이 아닌 모험에 가까웠다. 예약을 하고 떠났지만, 제대로 된 통보도 없이 예약이 변경되거나 취소되었다. 스페인어 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어려워 손짓 발짓을 해댔다. 당시엔 구글맵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용도 어려워 가이드북에 의존하며 다녔다. 그래도 그때 기억이 좋았던지 해마다 밖으로 나갔다. 여건이 되는 데로 가족이 함께 가거나, 큰 아이를 데리고 아버지와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가족 여행은 그랬다. 때론 불편하고 서로에게 신경질을 내거나 날카로운 감정 표현이 이어질 때도 있지만, 다녀오면 모두 추억이 되었다. 이런저런 추억에 잠기며 꽤 긴 산책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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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비가 오는 저녁은 가을을 닮았다. 비교적 시원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떨어지며 빨리 어둑해졌다. 벚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니 아직도 박명이 남아 있었다. 박명 역시 여명처럼 희망의 빛이겠지? 아버지는 유독 가을을 좋아하신다. 곧 다가올 가을을 맞이하며 박명처럼 다가올 희망이 우리 앞에 펼쳐지기를 기도했다.


내일은 어쩌면 항암이 시작되는 첫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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