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에게 메일을 보냈다

영국에서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하다

by 지민

3년 가까이 쓴 핸드폰이 말썽이었다. 툭하면 방전되기 일쑤였고, 특히 겨울엔 완충한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픽 하고 전원이 나가버리곤 했다. 카메라도 문제였다. 곧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던 터라, 분명히 멋질 그곳의 풍경과 건물들을 더 높은 화소로 담고 싶었다. 몇 달을 고민하고 끙끙대다 큰 마음을 먹고 애플 매장으로 갔다. 이미 살 모델은 정해져 있었다. 아이폰 세븐. 500파운드라는 거금을 내고 샀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행복했던 6개월이 물처럼 흐르고, 그 날이 왔다. 그 날은 살 생각도 없던 수첩이나 볼펜을 괜히 구경 가고 싶던 날이었다. 매장 앞에서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고, 핸드폰을 자켓 주머니에 대충 꽂고, 입구 바로 앞에 있던 수첩을 두어 개 뒤적거리고, 다시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주머니가 텅 비어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몇 초가 지나고, 옆 사람에게 핸드폰을 빌려 전화해봤지만 이미 전원은 꺼진 후였다.


매장 직원에게 달려가 상황을 설명하고 CCTV를 보여달라고 했다. 관계자 외에는 볼 수가 없다며 확인 후 얘기해주겠다고 했고, 그가 들어간 동안 쇼핑몰의 가드가 와 또 상황을 설명했다. 시간을 확인할 수 없어 거기서 얼마나 서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내겐 영겁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직원이 다시 나왔다. 누군가 내게 부딪힌 후 매장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찍혔지만, 그가 핸드폰을 가져간 확실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울면서 가게를 나왔다. 그 길로 애플에 찾아가 전원이 꺼진 핸드폰 추적이 가능한지 물어봤고, 경찰에 신고했고, 알고 보니 분실물 센터에 신고한 거였고, 집에 와 호스트에게 얘기해 진짜 경찰에 신고했고, 몇 주간 경찰과 연락하며 상황을 보고 받았고, 애플에 또 찾아갔고,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팀 쿡에게 메일을 보내면 읽는다길래 보냈다, 무려 주소를 바꿔가며 여러 통을. 물론 답장은 안 왔다. 읽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이 일이 일어난 게 브리스톨을 떠나기 3주 전이었다. 그 3주 동안 내내 울고 화내며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내가 나를 보호하는 가장 큰 방어 방법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짐을 싸 두는 것이다. 그리고 떠난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처한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의 그 공격은 꿈에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짐을 채 싸 놓을 시간도, 최선을 다할 새도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고 몹시도 힘들었다. 500파운드를 날린 것도 물론 속이 쓰렸지만, 6개월간 거기 담아놓은 추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나갔다. 결국 툭하면 방전되는 그 아이와 유럽을 돌아다녔고,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아이를 만났다. 그때를 생각하면, 사진을 보면, 여전히 조금은 아리지만 이제 더 이상 슬프거나 아프거나 화나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진부한 말이 정답이었다. ‘그 지나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그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 고통은 내게 무엇을 남기는가’ 등의 수많은 물음표가 뒤따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일에는, 그게 무슨 일이든, 엔딩이 있다. 6개월 간 함께 한 사진은 물리적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덧붙여 그때의 경험은 나를 조심성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으니, 어찌 보면 단 500파운드에 인생 수업을 잘 치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