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 코스타 브라바

브리스톨에서 첫 외국인 친구가 생기다

by 지민

마르타. 영국에서 만난 스페인인 그녀의 이름. 멀고도 낯선 땅에서 마르타는 내가 처음으로 친해진 외국인 친구다. 브리스톨에 도착한 지 만 하루. 그녀를 처음 만난 그 날 어학원 오리엔테이션에는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 있었고, 그곳에서 난 아시아에서 온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어학원 특성상 길게 머물다 가는 나 같은 장기체류자들이 있는가 하면 주 단위로 와 잠시 스쳐가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마르타는 후자의 경우였다.


그녀가 브리스톨에 머물렀던 시간은 단 2주. 하루를 일주일처럼 쓰고 싶어 했던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십 대 소녀처럼 매일 도시 안팎을 탐방했다.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다른 카페를 찾아가 브런치를 먹었고, 오전 수업이 있는 날엔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버스를 타고 도시 밖으로 향했다.


그녀와 내가 짧은 시간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 이곳저곳에 있었다. 우린 처음으로 영국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고, 맛이 없었던 그러나 그 동네에서는 제일 유명했던 뷔페에 갔고, 비 오는 날 전망대에 올라 운무 가득한 도시를 내려다봤고, 날이 맑았던 흔치 않은 날엔 테라스에 앉아 피자를 한 판씩 시켜먹고, 강가에 앉아 노을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떠나기 전 마지막 주말, 우린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옆 동네 체다에 갔다. 맞다, 체다 치즈의 그 체다. 그곳의 동굴에서 숙성시킨 치즈가 바로 체다 치즈라고 해, 뭐 굉장히 특별한 게 있는 동굴인가 싶어 가봤는데 딱히 별 건 없었다. 동굴 탐험을 마친 뒤 나와서 먹은 애프터눈 티가 몇 배는 더 인상 깊었으니.


그리고 우린 길을 잃었다. 유명하다는 체다 고지(협곡)에 올라 절경을 감상하고는 내려가는 길에 출구를 찾지 못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걸어 다녔으며, 다 내려와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오지 않아 버스 정류장에 앉아 집 나간 주인을 찾는 강아지처럼 그저 하염없이 기다렸다. 당시에는 불행이었지만 그때 그녀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녀는 10년을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다. 친한 친구의 오빠라고 했는데, 10년 전 그를 본 순간 첫눈에 뿅 하고 반해버렸다고. 당장 결혼 생각은 없지만 같이 살고 있는 중이며, 남자 친구는 집에서 마리화나를 말아 피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아했다.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둘의 또 다른 가족이고, 평범한 회사에서 일하며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독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마르타는 그녀의 홈 스윗 홈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 스페인 여행 계획이 있다면 꼭 들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꼭 10개월 후 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탔다. 그녀는 바르셀로나에서 조금 떨어진 카탈루냐 지역의 한적한 도시에 살았는데, 나의 여정을 알리니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나의 프라이빗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브리스톨에서 그랬듯 우리는 또 도시 곳곳을 쏘다녔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가 모래사장에 사람이 바글바글 가득한 광경을 목도하였고, 맥주와 함께 타파스 인기메뉴라는 파타타 브라바스를 먹었고,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오렌지 향 가득한 샹그리아도 마셨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 코스타 브라바도 갔다.


나름 바다를 좋아하고 여러 나라의 또 여러 도시의 다양한 해변을 가보았다고 자부하는 나임에도, 코스타 브라바는 단언컨대 전에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바다였다. 스페인의 이글거리는 직사광선을 온몸으로 껴안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표면, 그 바다를 바라보며 백사장을 걷는 자유로운 사람들, 그 위에 스카프를 무심히 깔고 아무렇지 않게 누운 나와 마르타.


해변가 키오스크에서 마르타는 맥주를, 술을 마시면 얼굴이 토마토로 변하는 나는 콜라를 사 가지고 와 꿀꺽꿀꺽 갈증을 해소하고는 바다로 풍덩 몸을 던졌다. 수영도 못 하는 주제에 겁도 없이 그 반짝이는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 정수리 끝부터 발 끝까지 온몸을 푹 담가버렸다. 내가 수영을 잘하든 못하든, 무엇을 입었든, 어떻게 행동하든, 그곳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마르타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 집에서 마리화나를 말아 핀다는 남자 친구와 강아지, 고양이도 직접 만났다. 집 베란다에서 마리화나를 키운다던 그는 정말 내 앞에서 마리화나 잎을 둘둘 말아 피웠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날 저녁 마르타는 카탈루냐의 전통 음식이라는 판 콘 토마테와 햄, 치즈, 와인을 내주었고, 식사가 끝난 후 우린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하고 다시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마르타의 집에서 내가 묵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숙소까지는 기차로 1시간, 차로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마르타와 그녀의 남자 친구는 나를 기꺼이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녀와 내가 함께 지낸 시간은 영국에서 고작 2주,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의 이틀이 전부였지만, 우리 우정의 깊이와 농도는 결코 그 시간과 비례하지 않았다. 그 여름 바르셀로나에서 안녕을 고한 후 지금껏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린 알고 있다. 시간이 더 흘러 어느 좋은 날 좋은 시간에 다시 만나게 되면 누구보다 반갑게 다시 안녕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