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사랑하는 파리지앵 그녀의 이름은 샬롯

브리스톨에서 소울메이트를 만나다

by 지민

단언컨대 작년 여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더웠던 여름이었다. 낮 최고 온도는 40도를 넘기 일쑤였고, 머리 위에서는 해가 이글이글 타올랐으며, 저녁 8시가 훌쩍 넘어도 그 뜨거운 해는 질 줄 몰랐다. 낮 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거나 해가 질 때 즈음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했다. 나는 스페인에 있었다.


무섭도록 더웠던 7월의 마지막 금요일, 마드리드에서 샬롯을 다시 만났다. 영국의 작은 도시 브리스톨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알게 된 파리지앵 그녀.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았던 금발머리 프랑스인과 흑발의 한국인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우린 학원에 가기 전 혹은 수업이 끝난 후 브리스톨 이 곳 저 곳을 쏘다니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되었다.


찰나 같던 3개월이 지난 후 샬롯은 다시 파리로 돌아갔고, 난 영국에 남았다. 이후 몇 달의 텀을 두고 우린 파리에서 한 번, 브뤼셀에서 또 한 번 재회했다. 서로를 친구라 부르는 기간이 길어지며 그녀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 큰 관심과 애정이 생겼고, 나는 첫 인상이 꽤나 좋지 않았던 파리를 그녀로 인해 다시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곳은, 바로 그 마드리드였다. 내가 예약한 숙소 지척에 부러 방을 잡은 샬롯 덕분에 짐을 풀어놓고 집 앞에서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만나서 회포를 풀던 우린 길을 걷다 거울을 발견하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재회의 반가움을 표현하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말이 없는 사진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는 기쁨의 몸짓, 지금도 귀에 울리는 듯한 그 순간의 웃음소리.


생애 가장 더웠던 여름, 그 날의 열기는 단지 미치도록 더웠던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먼 타지에서 만나 뜻밖의 우정을 쌓고 여러 번 다시 만나 기뻤던 반가움의 뜨거움도 있었다.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마드리드에서의 일주일. 머물던 내내 웃고 떠들던 기억으로 충만한 그 곳에서 우린 눈물로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파리로 돌아간 그녀는 얼마간 인스타그램 피드에 한글로 댓글을 종종 달곤 했고, 많이 지나지 않아 내게 한국어로 타투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팔에 한글로 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한글 사랑. 한글로 된 사인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줬고, 디자이너를 꿈꾸는 그녀는 한국어로 타이포그래피를 하겠다고 했다.


지난주 샬롯은 또 한 장의 사진을 내게 보냈다. 손목에 수줍게 자리잡은 ‘사랑과 사랑에’. 어떤 구절을 할지 고민하고 찾아본 뒤 그걸 한국어로 번역하고, 종이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그려내 타투이스트에게 내밀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타투 사진 아래 그녀는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이 가득 담긴 저 여섯 글자에 그녀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했다.


최근 우리 대화의 가장 큰 화두는 다음 재회 국가와 도시에 대한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의 창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우린 그저 만남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다. 국경과 시차를 뛰어넘은 국제 우정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그곳이 어디든 그녀의 타투를 얼른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