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만난 픽업 기사 아저씨
대부분의 이들이 내 선택을 응원해주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걱정하는 척 비수를 꽂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것 귓등으로 넘기면 되지 무얼 그렇게 신경 썼냐 묻는다면, 그럴 수 없었다. 나 또한 몹시 불안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제일 바짝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리를 잡는다고 하는 시기에 모은 돈 전부를 가지고 떠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녀오면 잔고 0부터 시작해야 했고, 일자리도 다시 구해야 했다. 쿨한 척, 내년 일은 내년에 생각하지 뭐, 했지만 그건 자기 위안이자 최면이었다. 그럴 때 날아오는 현실적인 충고는 어찌나 귀에 아프게 꽂히던지.
"한국에 영어 잘하는 애들 발에 차인다. 영어 공부하려면 한국에서 하는 게 더 낫다. 유학 다녀온 애들은 얼마나 널렸는데 또. 1년 다녀온다고 인생이 얼마나 바뀔 것 같냐. 힘들게 일하고 있는 엄마 생각은 안 하냐. 넉넉지 않은 너네 집 사정은 어떻고. 괜히 헛바람만 들어선 저런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 이미 다 알고 있고 그래서 지난 3년간 날 더욱 고민하게 만든 그것들. 아이러니하게도, 종국엔 이런 말들이 내 선택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늦으면 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후회만 잔뜩 껴안고 주저앉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쨌거나 날 단단하게 다져주었으니 어떻게 보면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기어이 난 1년 치 짐을 짊어지고 12시간을 날아 런던에 도착했다. 브리스톨까지는 차를 타고 2시간 반 남짓을 더 가야 한다. 런던에서 홈스테이 할 집까지 데려다 줄 픽업 기사님을 만났다. 그는 내게 “왜 이곳에 왔냐”고 물었다. 오래 회사를 다녔고, 한 번쯤 해외살이를 꿈꿨고, 영어를 더 공부해야겠다고 느꼈고, 그래서 결심을 하고 돈을 모았다며 긴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재미도 없는 이야기에 돌아온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아저씨는 내게 "뿌듯하다"고 하셨다. 이 곳에 오는 열명 중 여덟아홉 명은 그저 부모님의 돈으로 놀다 가려는 학생들이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한때는 그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철도, 돈도 없던 20대 초반. 하와이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기 전에도 가서도 당연하다는 듯 부모님 돈으로 생활했고,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니 아까운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 열몇 명을 추려 다 함께 간 것이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 친구들과만 어울려 놀았고. 영어? 수업시간 말곤 쓸 일이 없었다. 더 공부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노는 게 제일 좋았다.
물론 그때의 시간은 지금의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재산이 되었다. 그때의 내가 없었다면, 그때의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철 없이 시간만 허비하며 살았을 것이 뻔할 테니. 그 경험 덕분에 난 더욱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다. 이기적이지만 내 돈으로 내 꿈을 위해 떠난 곳에서 내가 허투루 쓸 시간은 단 1분도 없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한 내 불안감이 언뜻 비쳤는지 그는 내게 다음 주에 픽업 갈 예정인 학생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몇 년 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귀국했다가 다시 영어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올 계획이라는 그녀. 그녀는 70대 할머니라고 했다. 아저씨 또한 그녀의 열정에 몹시 놀랐다고. 그녀에 비하면 난 유치원생 정도라는 말과 함께.
영국에 도착한 첫날, 그러니까 모든 응원과 염려를 뒤로 하고 떠나온 타지에서의 첫날. 가족도, 오랜 친구도 아닌 처음 본 픽업 기사 아저씨의 말이 제일 큰 위로가 되었고 아주 오래 남았다. 쉽지만은 않았던 1년 간의 타향살이에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때도 거듭 고맙다고 말씀드렸지만 여전히 참 감사한 분이다.
세상에 100% 모두가 응원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에는 반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게 합리적인 것이든, 반대를 위한 반대이든,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해 일단 반기를 들고 보는 것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반대들을 이겨낼 수 없다면,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바뀌지 않는다. 그에 대한 후회는 오롯이 내 몫이며, 그들은 결코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