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에어비앤비 사장님과 친구가 되다
‘재주장터. 1박에 2인 3만 5천 원.’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위치는 다소 애매한 곳에 있었지만 그건 전혀 상관없었다. 우리에겐 제주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줄 렌터카가 있었고, 어디에서 무엇을 봐도 아름다울 제주였기 때문이다. 이미 비행기 티켓은 예매해 둔 상황, 같이 갈 친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계획도 일정도 없는 제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시 서울에서의 운전 경험은 없었지만 타 지역에서 나름 엑셀 좀 밟아본 친구가 운전대를 잡았고, 장롱면허 5년 차였던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무려 쌍라이트를 켜고 아슬아슬 안전하게 도착한 숙소 앞에서 또 다른 위기와 맞닥뜨렸다. 친구는 주차를 할 줄 몰랐다, 아니, 잘하지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사장님을 불러 도움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주차를 해주었다. 그것이 우리 셋의 첫 만남이었다.
대개 게스트하우스에는 소등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재주장터는 따로 정해진 시간도 없어 자유로웠고 무엇보다 (사장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손님도 많지 않았다. 좁은 계단을 올라 2층 문을 열고 들어서니 꽤나 넉넉한 공간에 큰 텐트가 하나, 작은 텐트가 하나 마련되어 있었다. 텐트 바닥엔 푹신한 이불이 놓여있었다. 겨울엔 따땃한 전기장판도 깔아주었다.
친구와 나는 대충 짐을 풀어놓고 밖에 나가 삼겹살을 먹었다. 다시 숙소로 가는 길 깨끗한 제주 밤공기를 만끽하며 근처 마트에서 양손 가득 맥주와 주전부리를 사 들고 털레털레 귀가했다. 마침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셋은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고 빔 프로젝터를 켜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행복했던 우리의 제주 여행 같은 영화였다. 이보다 더 알맞을 수 없는 영화였다.
술잔을 부딪치며 친해진 에어비앤비 사장 오빠와 우린 아침에 맷돌에 커피를 들들 갈아 마시고 협재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 해 첫 물놀이였다. 맥주병 몸으로 수영을 하고, 튜브도 타고, 다이빙도 했다. 실컷 놀고 나니 배가 고파져 해변가에서 치킨을 시켜 먹은 후엔 해안도로를 붕붕 달렸다. 그 날 저녁엔 근처 모슬포항에서 고등어회를 사 왔다. 처음 먹어본 고등어회였다. 어찌나 쫀득하고 고소하던지.
해가 진 지 시간이 꽤 지나 온 하늘에 정전이 난 듯 깜깜해지고. 새로 온 손님들과 다 함께 반딧불이를 보러 갔다. 손 끝에서 반짝반짝,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깜깜한 밤을 채웠다. 몹시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마치 동화처럼 반딧불이들이 초여름의 제주 밤하늘을 수놓았다. 아름다웠다. 두 번째 밤이자 마지막 밤이었던 그 날, 우린 또 한껏 얼큰하게 취했다. 짧디 짧은 2박 3일의 여행 후 서울로 돌아왔고, 이듬해 가을 우린 또 제주로 갔다. 재주장터로 갔다.
그간 많은 여행 중에 여러 숙박업소에 머물렀지만, 한 번 간 곳을 두 번 이상 간 적은 없었다. 이유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 가장 컸고, '이미 경험해본 곳보다는 새로운 곳이 낫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곳을 찾은 것은 오빠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그저 흔하디 흔한 에어비앤비 사장님 중 한 명, 다신 보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을 사람.
하지만 인연이란 것이 참 신기한 게 그렇게 끝나도록 두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또 재주장터를 선택하게 된 것을 보니. 물론 그만한 가성비의 숙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 찾은 재주장터에서 우린 또 협재 해수욕장에 갔고, 또 술을 마셨고, 또 빔 프로젝터를 쏴 영화를 봤다. 그 날은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그날도 우리밖에 없었다. 큰 방을 우리가 다 전세 낸 양 웃고 떠들며 활보했다.
오빠는 처음 보는 어리숙한 게스트의 차를 대신 주차해줄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었고, 정해지지 않은 소등 시간처럼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묻지 않아도 알아서 근처 맛집을 추천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게스트들의 저녁을 손수 만들어주거나 직접 돈을 내고 시켜주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드라이브에 바비큐에 투어에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못 할만한 것도 다 해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다음은 2년 후였다. 여름, 가을, 그리고 초여름. 또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근황 토크를 나누었고, 또 또 협재 해수욕장에 갔다. 지난 제주들이 그랬듯 그날도 별스러운 것은 없었지만 그저 제주라는 것에 좋았다. 참, 그날은 신기한 우연이 있었다. 당시에 다니던 회사 근처의 단골 카페가 어느 날 갑자기 제주도로 이사를 했는데, 마지막 날 길을 걷다 그 카페를 발견한 것. 괜히 혼자 들뜬 마음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보자마자 알아봐 주셨다. 이상하게 기뻤다. 변함없는 커피 맛 또한 반갑고 고마웠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제주는 늘 오랜만에 만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친구처럼 좋다.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자주 보지 않아도,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오랜만에 얼굴을 보면 어색하긴커녕 반가운 그런 친구. 재주장터지기였던 그 오빠가 그랬고, 우연히 만난 단골 카페 사장님도 그랬다. 제주에는 제주를 닮은 사람들이 모이나 보다. 닮은 사람들끼리 서로 끌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