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 포교에 당하다
부모님이 동네에서 식당을 하셨다. 집에서 가게까지는 버스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자연스레 나의 거의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식당 일이 되었다. (첫 번째가 아닌 ‘거의’ 첫 번째인 이유는 패기 넘치던 고등학생 시절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2주 만에 입원한 전적이 있기 때문. 어쨌든) 주로 음식을 서빙했고, 계산도 했고, 당시 시급에 맞춰 일한 시간만큼 칼같이 돈을 받았다. 그게 나의 생활비이자 용돈이었다.
여느 때처럼 가게로 아르바이트를 가던 길.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어떤 여자가 말을 걸었다. 몹시 평범한 인상의 얼굴이었다. 근처의 건물 이름을 대며 그곳으로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여기서 어떻게 가시면 된다고 설명을 해주는데 왠지 그녀는 내 말에 영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길 안내가 끝나고 마저 버스를 기다리는데, 대뜸 무슨 내 기가 안 좋다고 했다. 조상님이 화가 나셨댔나. 맞다. 그 유명한 ‘도를 아십니까’였다.
지금도 간간이 보이긴 하지만, 그땐 길거리에서 그런 식으로 포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주로 그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상이 어떻다는 둥 조상님이 어쨌다는 둥 세상 꺼림칙한 말을 툭툭 내뱉는다. 당시 난 그렇게 본격적으로 전도인지 포교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당한 것이 처음이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런 말을 들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순간 내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포착한 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교과서와 같은 뻔한 수법 대로, 내게 얼마 걸리지 않는다며 이야기 좀 하자고 했고, 어리고 순진했던 혹은 멍청했던 나는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던 파리바게뜨로 그들과 함께 순순히 걸어 들어갔다. 가게 안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그들은 매대에 놓여있는 빵들을 한 움큼 집고 딸기 스무시까지 시키고는 계산대로 나를 떠밀었다.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호구가 별 수 있나, 그들 몫의 빵까지 모두 계산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원래 이런 얘긴 안 해주는 건데 해준다며, 뭐 이런저런 얘길 했다. 1시간이나 앉아 무슨 얘길 그렇게 했던 것인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이런 수에 속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들이 대개 들었을, 그런 얘기였을 것이다. 확실한 건 대화 말미에 제사를 지내러 가자고 했다. 까치산역에 무슨 제단이 있다고 하며. 그때, 가게로 아르바이트를 가던 길이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갔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은 품고 살고 있을, 간절함 때문이었다.
나의 간절함은 아빠였다. 그즈음부터 아빠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빠의 내면부터 갉아먹던 그 병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는 평생을 화목하기만 할 줄 알았던 우리 가족에게 난데없이 떨어진 날벼락과 같았다. 그때 벌써 우리가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을까. 어렸던 난 다른 무엇보다 그저 무서웠고, 아빠의 회복이 간절했다.
사람이 힘들어지면 무엇이든 믿고 싶은 구석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믿고 있는 종교는 없지만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백 번 이해한다.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가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없는 신앙심이라도 쥐어짜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 두려움과 혼돈이 막 시작되던 때에 그런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도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그 심정이 날 제단으로 끌고 갈 뻔했다. 가끔 절박함은 눈앞의 명징한 사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터무니없던 것이 이토록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우리 ‘진짜’ 조상님들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을까. 혹시 그날 내가 그들에게 등 떠밀려 까치산역까지 가지 않게 된 것이 조상님의 덕이었을까.
어쨌거나 돈으로 치르고 얻은 값진 교훈이었다. 1시간 시급 정도로 퉁쳤으니 다행이라고 봐야겠지. 물론 그 뒤로도 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그때와 같은 수법으로 말을 걸며 숱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일을 겪은 후로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심상치 않다 싶으면 앞에서 뭐라고 말을 걸든 대꾸도 하지 않는다. 사람 마음의 절박함을 쥐고 그걸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조금의 틈도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