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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Jun 21. 2022

예쁜 나도 나고, 못난 나도 나야

1.


사실 나는 너무 괴로워서 잘 보지도 못했다. 슬쩍 들춰만 봐도 부끄러움이 목 끝까지 차오를 것 같았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니, 이렇게 했더라면. 역시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침투해 날 괴롭혔고, 과거 곳곳에 산재해 나를 자꾸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과거의 나도, 과거의 내가 만든 현재의 나도, 현재의 내가 만들 미래의 나도, 다 꼴 보기가 싫었다.


2.


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갔을  냄새에 시각이 마비돼 예쁜  몰랐고, 두 번째 갔을  아름다움에 후각이 마비돼 냄새가 나는  몰랐다. 하지만 그저 예뻐서 좋다는  잘생긴 남자가 좋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찬란한 아름다움을 뚫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깊숙이 찌르기 시작했다.


디즈니랜드에서 미키마우스와 인사를 하고 온 여행 마지막 날.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쉬워 피곤에 쩌든 다리를 끌고 센강으로 향했다. 멀리 에펠탑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리 아래쪽에서 분주함이 느껴졌다. 45도가량 시선을 아래로 하니, 이럴 수가, 족히 열 마리는 되어 보이는 쥐들이 쓰레기통과 굴다리 밑을 바삐 오가고 있었다.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사는 곳답게 거리에서 패셔니스타들을 마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횡단보도를 런웨이로 만들어버리는 이들부터 꾸안꾸의 정석을 보여주듯 꾸미지 않았음에도 멋이 줄줄 새어 나오는 이들까지.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슈퍼마켓과 역, 관광지 근처에 드러누워 남루한 옷들을 여러 겹 레이어드해 입고 남는 동전을 바라는 노숙자들이 즐비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단 하루도 밤거리를 걷지 않은 날이 없다. 해가 지면 온통 노랗게 변하는 밤거리가 따뜻했고 그 중심을 오랜 시간 지켜온 건축물들이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거리에 온통 기분 나쁜 냄새가 찐득하게 붙어 줄곧 따라다녔음에도 그 도시 불빛을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도시에 이렇게 말하는 건 조금 많이 이상하지만, 이제야 인간미가 느껴졌다.


3.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자아성찰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필요성 결여가 아니라 두려움 과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쁜 나도 나고, 못난 나도 나였다. 어제 찍힌 못 나온 사진 속 나도 나고, 오늘 찍은 잘 나온 사진 속 나도 나였다. 내 과거의 눅진한 악취도 인정하는 그때가 오면, 나도 나를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난 꽤 늦었지만, 아주 천천히, 그리고 여전히 느리게 나의 거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걷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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