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한국어 강사가 되고 싶었나
한국어 강사가 될 줄은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몰랐다. 가르치는 것은커녕 배우는 것에도 영 재능이 없던 나였고, 그런 고로 가르침만큼 배움이 늘 뒤따르는 교육자의 길은 곁눈질로도 바라본 적 없던 길이었다. 그뿐이랴. 나는 누구 앞에 나서거나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학창 시절에 반장선거 한 번 제대로 나간 적이 없었고, 성인이 되어 회사에 입사해서도 주간 회의 때마다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벌게지곤 했다.
그런데 어쩌다 팔자에도 없던 이 길을 걷게 된 거냐고?
때는 대 코로나 시대. 당시 나는 여행업계에 종사 중이었다. 여행이 좋으면 그저 다니면 될 것을, 왜 굳이 그 길에 뛰어들었을까, 그것도 하필 세계적으로 전례 없던 역병이 퍼지기 두 달 전에. 맥주 이름을 닮은 바이러스 하나가 세계 경제는 물론 보잘것없는 나의 가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며 나는 절망에 빠졌다. 변수가 너무도 많은 이 직업군에 환멸까지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 내 잔고와 주저앉아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기술이 필요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어디에 가서도 먹고살 수 있는 내 기술. 당시 떠오른 키워드는 사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였다. 나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그보다 더 다양한 문화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좋아했다. 외국어, 외국인, 언어, 공부… 그때, 20대 중반쯤 한번 공부하려다 좌절되었던 ‘한국어 교육’이 생각났다.
코로나가 한반도를 정조준해 강타한 2021년 3월 나는 커리어를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공부를 시작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든 것은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커리어를 변경했다는 조급함 때문에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실전에 투입시켰는데, 이마저도 다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대면으로만 경력을 쌓으며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고, 나는 한국어교육학 학위와 함께 한국어교원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학생과 나 사이에 안전하게 놓인 렌즈를 보호막 삼아 하는 온라인 수업에서 나는 물 만난 듯 날아다녔지만, 과연 아무것도 없는 오프라인에서는 어떨까. 주목받는 것이 싫어 사람들 앞에 서는 것만도 괴로운 내가 교실 책상에 앉아 나만 바라보는 학생들의 뜨거운 눈을 견딜 수 있을까. 혹 그렇지 못하면 어쩌지. 이 덧없는 우려를 실험 및 증명해 볼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소규모 사설 한국어학원에서 약 반년 동안 일하게 된 것이다.
한 달에 신규 학생이 두어 명 들어올까 말까 한 그 작은 어학원에서 나는 오전 정규수업을 맡아 가르쳤다. 대개 두 명, 많으면 네 명의 학생이 있던 그 교실에서 나는 꽤 괜찮은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이 따르고 좋아하는 만큼 나도 신이 나서 최선을 다해 수업에 임했다. 말도 못 하게 부족한 초보 선생님이었지만, 그 수업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관대한 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데서 오는 희열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결심했다. 뒤늦게 찾은 적성과 내 마음을 따르기로. 이 길을 계속 걸어가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