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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ul 17. 2023

[스페인]몬세라트(Montserrat)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 여행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일일 투어 차량으로 1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Mont/serrat)는 '톱니꼴의 산(serrated mountain)'이라는 뜻이다. 굵은 돌기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굵은 버섯을 뭉쳐놓은 것 같다.


몬세라트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산의 주요 성분은 석회암이다. 칼슘 탄산화물인 석회암은 물에 잘 용해돼 화강암에 비해 둥글둥글한 모습을 띤다. 몬세라트는 수백만 년 동안 강한 바람과 비에 침식되면서, 지금의 첨봉 형태가 됐다.

몬세라트 산. 첨봉(尖峰)이 우리나라 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 직접 촬영
몬세라트 산. 첨봉(尖峰)이 우리나라 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 직접 촬영

몬세라트엔 1025년에 세워진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 위치는 해발 720m라는데 아파트로 치면 대략 260층 높이 정도 된다. 주차장에서 내리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시야가 탁 트여 카탈루냐 지방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성지순례 필수 코스로 꼽히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요한 종교적 명소다. 스페인의 위대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를 비롯해 수많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몬세라트에 와서 심신을 수양했다고 한다. 수도원엔 숙박시설도 있다. 여행객들이 빠져나간 저녁 수도원의 고적함을 느끼고픈 사람들이라면 1박 2일 일정으로 구성해도 좋을 것 같다.

몬세라트 수도원 입구에 있는 산 조르디 기사 조각상 / 직접촬영

수도원에 들어서면 산 조르디 기사 조각이 여행자들을 맞아준다. 사그라다파밀리아(성가족대성당)의 '수난의 파사드'를 장식한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의 작품이다. 기사 조각은 양각이 아닌 음각으로 표현돼 있고 전체적으로 직선이 사용돼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인간의 표정과 근육을 세밀하게 표현한 이탈리아 미켈란젤로의 조각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해야 할까.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 / 직접 촬영

몬세라트에선 성당 2층에 있는 검은 성모상(La Moreneta)이 가장 유명하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무릎에 앉힌 모습인데, 성모와 예수의 얼굴 등 피부가 검은색이다. 그리스도교의 인물들은 백인으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검은 성모상의 제작자나 만들어진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9세기 몬세라트 수도원장이 우연히 발견했다는 얘기가 있다. 원래 성당이 아닌 산중 동굴 속에 있었는데 12세기에 성당으로 옮겼다고도 한다.


한편 성모상의 원래 피부색이 백색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의 색이 주변 물질과 화학작용을 통해 검은색으로 변했다는 가설이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검은 피부는 성모상을 더욱 신비롭고 신성한 존재로 보이게 한다.

검은 성모상.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막을 설치했다.  / 직접 촬영

이곳에선 세계 3대 합창단으로 꼽히는 소년 성가대 에스꼴라니아(Escolania)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1시에 10분가량 공연을 하고 일요일 오전엔 미사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에스꼴라니아 홈페이지나 여행 대행사를 통해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아이들 방학도 있는 만큼 허탕을 치지 않으려면 일정 확인은 필수다.


에스꼴라니아 음악학교는 수도원에서 지내며 노래와 공부를 배우는 기숙학교다. 에스꼴라니아는 구성원 전원이 수재 소리를 듣는 아이들이고 그만큼 경쟁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자녀를 예술가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다는데…


단복을 입고 제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니 어린 시절 복사하던 때가 생각났다. 복사는 미사 때 신부님 옆에서 시중드는 아이를 말한다. 당시 복사단의 규율은 매우 엄격했다. 조금만 규칙을 어겨도 신부님이나 수녀님께 혼쭐이 났다. 벌은 주로 성경 필사였다. 고린도 전서를 노트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베껴 쓰던 기억이 난다.

에스꼴라니아 성가 공연 / 직접 촬영

성당을 보고 나오는 길에 초를 봉헌했다. 우리 부부는 여행지에서 성당에 들를 때마다 꼭 초를 켜고 기도한다. 여행하면서 맛있는 음식과 쇼핑에 돈 쓰는 것도 좋지만, 성당에 봉헌하면 우리의 마음이 오랫동안 그곳에 깃들 것 같다. 한편으론 가톨릭 신자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픈 냉담자 이기심의 발로일지도 모르고.

검은 마리아상을 보고 나오는 길, 초를 봉헌했다. 지금쯤 다 타고 바닥이 보이려나? / 직접 촬영

몬세라트 성당을 구경했다면 박물관(Museu de montserrat)으로 가자. 다들 검은 성모상에 관심을 빼앗겨 박물관엔 별 기대를 안 할지 모르겠으미켈란젤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명 작가들의 회화가 즐비해 매우 볼만하다. 그밖에 미라, 각종 보석, 성서 등 고고학 유물도 있다. 몬세라트의 정품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도 잊지 말고!

몬세라트 박물관. 오른쪽은 피카소의 그림 / 직접 촬영

수도원 맞은편엔 옛 기도실로 올라갈 수 있는 산조안 산악기차(Funicular Sant Joan)가 있다. 우리 부부는 푸니쿨라에 타는 대신 튼튼한 네 다리(!)로 산미겔 십자가 전망대(Creu de Sant Miquel)로 산책할 겸 걸어갔다.

산조안 산악기차(Funicular Sant Joan) / 직접 촬영
산미겔 십자가 전망대 / 직접 촬영

전망대에선 몬세라트 수도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십자가 옆에 서서 카탈루냐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건져보자. 물론 바람이 많이 불어 머리가 정신없이 휘날리기 때문에 멋진 모습을 유지하긴 쉽지 않다. 수도원에서 걸어서 편도 20분이니 사진 찍고 숨돌릴 시간 포함하면 1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수도원 내 카페테리아 / 직접 촬영

트레킹 후 당이 떨어졌다면 카페나 식당에 들러 요기할 수 있다. 상기했듯 수도원 내에 호텔도 있어서 숙박도 가능하다. 하지만 성지순례가 목적이 아니라면 오전이나 오후 정도 일정으로 수도원을 거진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카페에서 간단한 빵과 과일, 커피로 배를 채우고 시체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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