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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ul 02. 2023

[이탈리아]나무 위에 선 물의 도시 베네치아

베네치아 산타 루시아 기차역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전경(좌). 대운하를 감상할 수 있는 리알토 다리(우) / 직접 촬영

갯벌 위에 만들어진 간척 도시


도시 곳곳을 물길이 휘돌아가는 수상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영문명 베니스). 이번 여름휴가까지 두 번째 방문인데, 나는 베네치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비로소 궁금하게 됐다.


베네치아 지역은 원래 습지대여서 사람이 주거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5세기쯤 이러저러한 이유로 베네치아로 난민이 몰렸고,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건물을 지어야만 했다.


그래서 초기 베네치아 사람들은 긴 나무 말뚝을 뻘 아래로 수직으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단단한 지반에 닿을 때까지. 이 나무 기둥을 촘촘하게 세운 뒤 그 위에 널따란 나무판자를 깔고, 비로소 그 위에 석재를 이용해 집을 지었다.


이후 베네치아로 인구 유입이 늘면서 간척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다. 습지대 위에 만들어진 수상 도시는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으로까지 떠오르게 된다.

베네치아 도시를 나무 기둥이 빽빽이 떠받치고 있는 모습. CG다. / 출처 Science Channel 유튜브 갈무리


베네치아는 관리가 필요하다


하나만으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무 기둥이 모이면 커다란 도시를 떠받칠 만큼 힘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물가에 있는 건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침식 위험에 노출된다.


특히나 이제는 지구 온난화로 점점 올라가는 해수면 높이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베네치아엔 과도한 하중을 통제하기 위한 몇 가지 규정들이 있다. 당연히 건물을 새로 지을 땐 건물 안정성과 도시 전체 하중을 고려해 규제가 적용된다.


베네치아 구도심에선 자동차나 오토바이, 심지어 자전거조차 찾아볼 수 없다. 대중교통은 물 위를 천천히 다니는 수상택시와 수상버스(바포레토) 뿐이다. 보트의 운행 속도도 저속으로 제한된다. 센 물결이 일어 수로 주변이 부서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항구에선 크루즈선과 대형 선박의 출입을 막고 있다. 큰 배가 들어오면 그 부피만큼 수면이 올라가 건물이 잠길 수 있고, 오가는 도중 큰 물결이 일면서 시설물을 침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광객을 통제하고 있다. 베네치아엔 연간 30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사람의 몸무게도 당연히 도시에 부담을 줄 것이다. 베네치아는 유명 관광명소에 일일 입장 인원수를 제한하거나 관광세를 부과함으로써 관광객 수를 조절하고 있다.

산 마르코 광장과 구도심 곳곳에 흐르는 물길 / 직접 촬영

오버투어리즘 경각심 불러 일으킨 핑크 플로이드 베니스 콘서트


1989년 7월, 영국 대형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베네치아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운하 위에 대형 수상 무대가 만들어졌다.


이때 관객 수가 20만명이라고 한다. 당시 베네치아 구도심 인구가 5만명이었다는데, 전체 인구의 4배가 산 마르코 광장에 집중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공연 기획 사실이 알려지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네치아 시에선 공연을 허가했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20만명 규모의 행사를 주최할 능력이 모자다. 치안은 마비됐다. 사람들은 공연을 더 잘 보기 위해 유적 위로 올라갔다. 화장실이 없어서 아무 데서나 용변을 봤다. 그리고 도시 곳곳이 무단 투기한 쓰레기로 넘쳐났다.


다행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도시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선 오버 투어리즘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89년 7월 핑크 플로이드의 베네치아 콘서트 당시 관중이 몰린 모습 / 출처 위키피디아
핑크 플로이드 콘서트 후 다음날 새벽 산 마르코 광장을 뒤덮은 쓰레기들 / 출처 backto1967 유튜브 갈무리

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만나고 싶다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자


베네치아가 일일 관광객 숫자을 조절하 있다지만, 7~8월 성수기엔 사람을 헤집고 다녀야 할 정도로 여행객들이 몰린다.


만약 베네치아에서 하루 정도 숙박을 한다면 새벽에 나와 일출을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5시쯤에 일어나 씻지도 말고 모자 하나 눌러쓰고 나가보자.


아직 관광객들이 베네치아에 발길을 들여놓기 전, 주민들만이 하루를 여는 시간 정숙한 베네치아는 무척 아름답다. 은은하게 상서로운 햇살이 하늘과 운하를 물들이고 하늘엔 제비가 유유히 날아다닌다.


사진작가들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산 마르코 광장엔 대운하나 산 마르코 성당을 배경으로 결혼 스냅 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들이 많았다. 운동복을 가져와 조깅하며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베네치아의 새벽 / 직접 촬영
산 마르코 성당에서 결혼 스냅 사진을 찍는 예비신부 / 직접 촬영
리알토 다리 주변 식당에 물자를 나르는 사람들 /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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