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에서 '출판기념회' 키워드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요 근래 상당히 많은 행사가 몰려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내년 4월 '총선 꿈나무'들이다. 현행법상 선거일 90일 전(2024년 1월 11일)부터는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기 때문에 너도나도 서두르는 모습이다.
일반적인 출판기념회라면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서 할 텐데, 선거가 목적이다 보니 장소도 수도권, 지방, 시골 등 각양각색이다. 심지어 책 제목도 없이 출판기념회만 홍보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 대다수가 출판기념회를 연다.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고, 신인이라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릴 좋은 기회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돈이다. 출판기념회는 상당히 남는 장사라고 알려져 있다.
출판기념회엔 정치인과 이해관계로 얽힌 각계각층의 인사가 몰린다. 이들은 책의 내용엔 관심이 없고, 책값으로 얼마를 지불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많은 수량을 쓸어가든가, 아니면 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값을 치르든가.
정치인이 들이는 비용은 3000만~4000만원 정도. 출판사는 팔린 책 정가에 해당하는 돈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정치인 몫이 된다. 이 돈은 한도도, 내역을 공개할 의무도, 세금을 낼 필요도 없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남길래 다들 난리일까?
일례로 뇌물·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는 모 의원은 자택이 압수수색되는 과정에서 현금 3억원이 발견되자 "출판기념회에서 모은 후원금"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모든 정치인이 거금을 쥐는 건 아니다. 3선 이상쯤이나 돼야 '억'소리가 나고, 초·재선 의원의 경우는 수천만원에 그친다고 한다. 하물며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에겐 출판기념회는 얼굴을 알리는 기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도 책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손수 글을 짓는 정치인도 없진 않겠으나, 선거판엔 대필이 활성화 돼있다. 정치인 본인은 서너 시간만 인터뷰하면 책은 대필작가들이 대신 써준다. 대필 출간이 불법은 아니긴 하다.
더러는 출판사나 대필업체에게 돈을 떼주기 싫어 1인 출판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다는 후문이다. 절약정신(?)이 굉장히 투철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주변 보좌진들이 대신 힘들어지겠지만.
2014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낸 정치관계법 개정의견
이렇듯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 창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여태 아무도 지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다. 매 선거마다 언론은 출판기념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법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4년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냈다. 공직선거의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일체의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려면 2일 전까지 개최일시, 장소, 출판사명 등을 관할 선관위에 신고하자는 것이 골자다.
2018년엔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이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출판기념회 수익을 '정치자금'으로 규정하고, 1명이 책을 한 권 넘게 살 수 없도록 하며, 기념회 개최 후 30일 이내 수입·지출 내역 의무화하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당시 행정안전위원회는 "출판기념회 수익은 사적 수입이라 정자법 규정이 적절한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고, 이후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즉 출판기념회를 개선하려는 어떤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의원님들 눈엔 당연히 탐탁지 않은 법일 테니까. 여야는 이런 분야에서만 협치를 잘한다. 결국 올해에도 내년에도 정치인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자서전을 쏟아낼 것이고, 돈을 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