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통화정책 반환점을 돌면서
2020년, 전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감금’됐다. 국가·도시 간 이동이 차단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만남이 제약되자 경제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이에 정부는 돈을 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재난지원금’이라고 불렸다. 대규모 유동성이 투입되자 사람들은 주식을 사고 부동산에 투자했다. 소비를 하라고 돈을 줬더니 자산 불리기에 혈안이 된 것이다. 넘치는 돈은 스타트업이나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 등 전망이 불확실한 분야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자산에 대규모 거품이 끼면서 ‘벼락부자’들이 탄생했다. 정점은 2021년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임에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아파트는 ‘오늘 사는 집이 제일 싸다’는 말이 진리로 여겨질 정도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상향 했다. 사람들은 ‘나만 벼락거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 ‘포모(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에 너도나도 빚을 내서 투자했다.
그런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앙등했다. 재난지원금이 촉발한 초과 수요와 전쟁이 불러온 공급 악화가 맞물리며 물가는 역대급으로 치솟았다. ‘인플레이션 괴물’의 등장이다. 전 세계 물가는 연율 10%대 상승폭을 보였다. 버는 것은 그대로거나 줄었는데 물건 가격이 치솟으면서 실질 소득이 급격히 깎였다.
물가를 낮추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끌어올리는 등 일제히 긴축 통화정책을 펼쳤다. 금리는 ‘돈의 값’이므로 고금리 상황에선 저축이 늘고 투자와 대출은 줄어든다. 금리가 올라 시중의 돈 흐름이 말라붙으면서 모든 자산의 가치가 꺼졌고,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대출로 생계를 이어가던 서민들의 삶은 더욱 가혹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빌려 집을 샀던 ‘영끌족’들은 비명을 질렀다.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들은 하나둘 폐업해 갔다.
특히 반도체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은 십 수개월 간 마이너스 수출을 겪으며 체력이 허약해졌다. 기업들은 영업이익이 바닥을 쳤다. 금융권도 흔들렸다. 금리 인상으로 채권의 가치가 급감하며 채권을 자산으로 삼고 있던 은행들이 위기에 봉착했고, 불안해진 예금주들이 모바일 뱅킹으로 한 번에 돈을 빼면서 ‘스마트폰 뱅크런’이 발생했다.
고금리 탓에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건설현장은 하나둘 공사가 중단됐다. 당연히 건설업계엔 현금 흐름이 끊겼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된 건설회사들은 부도 위기로 몰렸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건설업계에 돈을 대출해 준 금융회사들은 돈을 회수하지 못해 위기를 맞았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태’는 ‘돈맥경화’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 부동산 폭등 시기 땅 짚고 헤엄치며 돈 쓸어 담던 업계는, 이제 거리에 나앉을 처지에 몰렸다.
하지만 절망적인 사실은 인플레이션과 긴축 통화정책 국면이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연 3.50%, 미국 5.50%까지 치솟은 기준금리는 아직도 고공행진 중이다. 앞으로 기준금리는 과거처럼 ‘제로(0)’ 수준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년간의 초저금리의 향수에서 벗어나 고금리에 익숙해져야 할 때다. 우리는 앞으로 '돈이 비싼'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세계가 점점 분절됨에 따라 새로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낮잡을 수 없다. 러-우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이 터지며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대규모 감염병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같은 팬데믹이 또다시 창궐하면 그때마다 경제는 위기를 겪으리라. 지금 온기가 좀 돈다고 해서 마음을 완전히 놓아선 안 된다. 인플레이션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