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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an 09. 2024

최근 모델하우스에 가본 적 있으세요?

새로 지어질 아파트를 그대로 만들어놓은 모델하우스. 이곳에 가면 모델하우스를 다시 또 축소해 놓은 모형이 전시돼 있다. 우리는 이 전시모형을 통해 전체 단지가 어떻게 꾸며질지, 세대 내부는 어떻게 방이 나뉘며 어떤 가구를 놓을 수 있을지 등을 예측할 수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던 부분이지만, 알고 계시는가? 이 전시모형은 아파트 건설업체가 아닌 별도의 디자인업체가 만든다. 나는 어제 모델하우스 전시모형을 만드는 업체 대표 A 씨를 만나 최근의 업계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즘 원청인 건설업체들은 "모형이 필요할 것 같다" 말만 하고 실제 주문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단다. 부동산 시장이 장기간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발단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글로벌 공급망이 마비돼 원자재값이 치솟았다. 건설 비용이 급증다. 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를 낮추기 위해 강력한 긴축 통화정책을 펼쳤다.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끌어올린 것이다. 금리는 '돈의 가격표'다. 돈을 빌릴 때 내야 할 이자가 커지면서, 대출 기본으로 끼는 부동산 거래는 급감했다.


자연스럽게 건설업계는 돈가뭄을 겪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설회사들은 이미 받아 놓은 대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제때 갚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대표적으로 지금 태영건설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 워크아웃을 하든지 법정관리에 들어가든지 여하 간에 존립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A 씨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태영건설은 유명하고 큰 회사라 대대적으로 알려졌을 뿐 중소 건설업체 중에선 이미 부도난 곳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또, 태영건설이 잘못돼면 연쇄 쓰나미가 올 수 있다.


아무튼 건설경기가 말라붙으면서 자연스럽게 전시모형 업계도 보릿고개를 겪게 됐다. 그런데 이 업계는 전문인력들이 일하는 곳이다. 일감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상시 유지해야 하는 전문인력을 자를 수는 없다. 따라서 고정비가 많이 들어간다.


말을 하는 내내 A 대표의 얼굴엔 그늘이 져 있었다.


경제는 참 얄궂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종종 모델하우스에 취재를 나갔다. 그런데 난리도 아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모델하우스 밖으로 수십 미터 대기줄이 섰다. 건설업체 인력만으론 질서 유지가 안 돼 별도의 용역업체를 부르는 건 기본이었다. 몸에 문신 있는 그런 형들 말이다.


겨우겨우 안에 들어가더라도 밀집도가 높아 인파를 비집고 다니며 어렵게 구경해야 했다. 이런 난리통에 취재한답시고 부피 큰 카메라와 장정 두세 명이 활보했으니, 불만 섞인 눈총을 이만저만 받은 게 아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사람들은 모델하우스를 구경하자마자 바로 수십억 짜리 아파트 분양을 상담받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집값이 무섭게 치솟으며 '오늘 사는 집이 제일 싸다'는 말이 진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대출을 받아 집을 사자는 심리가 팽배했다. 이른바 포모(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다.


시장의 광기에 힘입어 부동산 업계는 땅 짚고 헤엄치며 돈을 벌었다. 그리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대출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영원히 이어질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을 끊임없이 돌고 돈다. 지금의 경제 상황에선 과욕을 버리고, 보다 멀리 내다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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