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나이프 시티 투어와 오로라 사냥

by 정준영

옐로우나이프에서의 둘째 날, 늦잠을 아주 자버렸다. 오로라 뷰잉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면 새벽 1시 30분이고, 씻고 누우면 거진 2시 30분에야 눈을 감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미리 사둔 샌드위치를 호텔 커피와 대충 곁들여 먹고 낮 시간 시내 투어에 나섰다. 역시 오로라빌리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첫 번째 행선지는 옐로우나이프 공항 근처 옐로우나이프 표지판과 비행기 모형이다. 옐로우나이프 지명은 말 그대로 '노란 칼'에서 유래했다. 옛날 탐험가들이 이 지역을 처음 발견했을 때 원주민들이 구리로 만든 노란 칼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표지판 옆으로 살짝 언덕을 오르면 파란색 비행기가 있다. 1940~1960년대 북부 캐나다에서 활약한 광산·정착지 보급용 화물기 'Bristol Freighter 170 MK 31'로, 퇴역한 뒤 기체를 전시한 것이다. 가이드는 "옐로우나이프 공항에 착륙한 최초의 항공기"라고 했는데, 사실인지는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옐로우나이프 사인과 퇴역 화물기 브리스톨 프라이터

다음으로는 노스웨스트 준주 의회에 방문했다. 옐로우나이프는 작은 도시 같지만 이래 봬도 노스웨스트라는 준주(Territory)의 수도다. 연방국가인 캐나다는 주(Province)와 준주(Territory)로 구성된다. 북부에 위치한 노스웨스트는 인구가 매우 적어서 주가 아닌 준주의 지위를 가진다. 따라서 준주 수도인 옐로우나이프 다운타운엔 의회뿐만 아니라 법원과 국방부 등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의회는 그리 크지 않았다. 동사무소보다는 크고, 구청보다는 작은 정도랄까? 우리가 방문한 당일 회의가 진행되고 있어서, 아쉽게도 회의장엔 들어가 보지 못하고 통유리를 통해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의원들 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중 심드렁한 표정의 의원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의회가 심심했던 대신 다른 행운이 따랐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타미건이라는 새를 본 것이다. 이 새는 흡사 흰 비둘기같이 생겼다. 그런데 여름에는 갈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보호색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발이 다른 새들과 달리 털로 덮여 있었다. 마치 복슬복슬한 부츠를 신고 종종종종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같았다.

다음으로 노스웨스트 준주의 공식 박물관인 Prince of Wales Northern Heritage Centre에 갔다. 원주민 문화, 광산·골드러시 역사, 북극 자연·동물, 오로라 및 북부 생활사를 전시하는 준주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다. 규모가 크지 않아서 1시간이면 족히 둘러볼 수 있을 듯 했다. 다른 계절에 온다면 2층 카페 창가에 앉아 호수를 보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옐로우나이프에는 카페가 없으니, 귀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그다음 The Great Slave 호수 위로 겨울 한정 개통된(?) 도로를 드라이브했다. 옐로우나이프는 겨울에 워낙 춥다 보니 거대한 호수도 꽝꽝 얼어버린다. 그래서 일정 기준 이하의 차량은 호수 위를 이동할 수 있게 도로를 공식 개통한다. 실제로 얼음 위를 차들이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캐나다 북부는 도로망이 제한적인 데다, 호수를 우회하려면 멀리 돌아가야 하는 만큼 아이스 로드는 요긴하다고 한다. 얼음이 무너져 빠지면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을 잠깐 했다.

거대한 호수가 도로로 변신

투어를 마치고 다운타운에 있는 여행자 센터에 방문했다. 이곳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될 이유가 있다. 북위 60도에 방문했다는 증명서와 공짜(!) 옐로우나이프 배지, 엽서를 나눠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나다의 다양한 야생동물 스탬프를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방문 당시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여행객 대여섯 명 사이에서 스탬프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이어리를 꾸미는 사람이라면 챙겨서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해 보면, 해외여행 중 여행자 센터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다. 그만큼 옐로우나이프에선 밤 오로라 관측 빼면 할 게 그리 많지 않다.

여행자 센터에서는 엽서에 노란 칼 모양의 배지를 달아서 나눠준다. 캐나다 북부 야생동물 모양의 스탬프도 마음껏 찍을 수 있다.

저녁은 The Black Knight Pub에서 화이트피시로 만든 피시 앤 칩스와 바이슨(Bison) 버거를 시켜 먹었다. 캐나다엔 Poutine을 제외하면 딱히 로컬 음식이랄 것은 없지만, 옐로우나이프는 생선 요리가 나름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피시 앤 칩스에서 맛의 변주를 주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가, 싶지만 어쨌든 맛은 좋았다. 그보다는 바이슨 버거가 매우 괜찮았다. 바이슨은 북미에 사는 들소라고 한다. 양념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풍미가 독특했다. 캐나다 라거인 코카니(Kokanee)를 산뜻하게 곁들이며 아주 만족스러운 저녁을 즐겼다.


이 펍은 요일마다 특정 메뉴를 할인한다. 예를 들어 수요일엔 오후 5시 이후부터 치킨 윙을 7 CAD(캐나다 달러)에 제공한다. 우리는 오로라 관측 전 제대로 된 식사를 위해 주문하지 않았지만, 주변 테이블을 보니 많이들 시켜 먹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캐나다에선 어지간한 메뉴는 1인분에 2~3만 원이고, 맥주 한 잔에 각종 세금, 15% 정도 팁까지 지불하면 한 끼에 4~5만 원은 우습다. 아무리 캐나다 소득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지만, 근사한 펍에서 7달러짜리 안주에 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조건임에 틀림없다.

The Black Knight Pub에서 즐기는 피시 앤 칩스와 코카니 한 잔

오로라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오로라 헌팅


오로라 관측 이틀 때엔 오로라빌리지에서의 정주형 뷰잉 대신 오로라 헌팅을 택했다. 업체는 '헬로오로라'라는 곳이었다. 19살 때 미국으로 넘어와 지금은 캐나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경상도 출신 남자 가이드가 우리를 이끌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옐로우나이프엔 오로라빌리지를 제외하고 대략 대여섯 군데 정도 오로라를 보기에 용이한 장소가 있는 듯했다. 사실 하늘이 맑으면야 어느 위치에 있어도 오로라가 보이니 굳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따라서 헌팅은 하늘이 다소 흐린 날 유의미하다. 오로라가 보일 때까지 계속해서 돌아다니니, 그만큼 관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엔 오로라 관측이 어려운데, 이때 오로라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면 낭패다.

오로라 헌팅은 차를 타고 오로라가 잘 보이는 지역을 찾아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운이 좋았다. 첫 번째 관측 지점에 내리자마자 오로라 댄싱이 펼쳐졌다. 상현달이 꽤나 밝았음에도 녹색의 오로라가 검은 하늘을 선명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오로라는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검은색 도화지 위에 녹색의 페인트를 통째로 크게 휘둘러 뿌려놓은 것 같기도 했고, 흡사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같기도 했다.

오로라 헌팅의 또 하나 장점은 가이드가 DSLR로 무료로 인물 사진을 찍어준다는 것이다. 오로라빌리지는 한 장 찍을 때마다 일정 금액을 받았다.

이날은 하늘이 잘 열려 있어서 굳이 다른 장소로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라를 잘 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데, 이동해 봐야 시간만 뺏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이드 말로는 '왜 헌팅인데 이동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꼭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두어 군데 더 장소를 바꾸었다. 내 생각엔 오로라가 잘 보이더라도 장소를 옮기는 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늘은 똑같다 하더라도 주위 환경에 따라 감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라 두 번째 관측은 첫날에 비하면 매우 성공적이었다. 오로라 댄싱도 서너 번 볼 수 있었고 구름도 끼지 않았다. 다만 날씨가 매우 추웠다. 낮에는 영하 20도가 안 됐었는데, 오로라를 한창 보고 있을 때쯤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졌다.


따라서 캐나다 북부에서 겨울 오로라를 볼 생각이라면 방한 준비에 철저해야 한다. 내의는 물론이고 두꺼운 바지도 두 겹은 기본이다. 귀까지 덮는 페이스 마스크는 필수다. 멋 부리느라 복장을 간소화하다간 살을 찢는 혹한에 오로라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 어차피 어두운 환경이라 인물 사진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로라를 더 감상하는 것이 낫다.


셋째 날은 날씨가 더 맑다고 예보되었다. 과연 우주가 어떤 장관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며 수마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