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옐로우나이프에선 넘어지면 안 된다
캐나다 옐로우나이프에서의 셋째 날에도 여전히 오로라빌리지가 운영하는 투어 일정이 진행됐다. 사실 그렇다. 옐로우나이프에서는 딱히 할 것도 없고, 너무 춥기 때문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투어 업체가 하라는 대로 따라다니면 몸과 마음이 편하다. 아마 투어를 하지 않는다면 종일 호텔에만 있게 될 듯하다.
호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옐로우나이프의 호텔은 그다지 친절하진 않다. 오로라를 새벽까지 보고 돌아오면 으레 늦잠을 자기 마련이다. 그래서 'Do Not Disturb' 팻말을 문 앞에 걸어놓고 잠을 청한다. 근데 보통의 호텔이라면, 늦잠을 자더라도 따로 방을 정리해 달라면 기꺼이 해준다. 그런데 옐로우나이프의 호텔은 "그럴 시간이 없다"라고 한다. 대신 부족한 물건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한다. 근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팁을 안 줘도 되니까. 아무튼 대충 전날 마트에서 사 온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주간 시티 투어를 시작했다.
오로라빌리지에선 개썰매를 체험할 수 있다. 시베리안허스키 등 대형견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오로라빌리지 주변을 한 바퀴 도는 프로그램이다. 하나의 썰매를 열댓 마리의 개가 끈다. 선두는 가장 똑똑한 개가 맡는다. 후방은 힘이 좋은 개다. 이 정도 숫자라면 개들에게 별로 힘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개썰매는 신기했다. 개들은 사람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썰매꾼은 개의 이름을 부르며 속도를 낼지, 방향을 바꿀지, 멈출지를 명령했다. 그 과정에 어떠한 물리적 작용도 없다. 썰매꾼은 그저 지시사항을 외칠 뿐이었다. 방향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두를 똑똑한 개에게 맡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과 개 사이 교감이 없다면 힘든 일이리라.
오로라빌리지엔 캠프파이어가 있다. 마시멜로우를 잔뜩 비치해 놨다. 따끈하면서도 바삭 달콤한 마시멜로우 구이를 먹으며 손과 발을 녹일 수 있다. 마시멜로우는 기다란 나무 꼬치에 꼽아서 구웠다. 나무 꼬치는 주변 숲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이용한 것 같았다. 마시멜로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인생에서 다시 맛볼 수 없는 별미라 느껴졌다. 영하 40도의 추위가 뭐든 맛있게 만든다.
그다음 프로그램은 스노슈잉(snowshoeing)이다. 눈에서 걸을 수 있도록 만든 스노슈즈를 신고 오로라빌리지 주변을 산책한다. 스노슈즈는 흡사 테니스 라켓처럼 생겼다. 넓은 틀이 눈 위에서 사람의 체중을 분산시켜서 덜 미끄러지도록 한다. 그렇다고 아예 미끄러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다 효과적으로 걷기 위해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다녔다.
추위는 대단했다. 인간의 숨결은 그대로 페이스마스크 위에서 얼어붙었다. 그리고 눈썹과 앞머리에 고드름이 맺혔다. 평소 끼는 안경 소재가 메탈이라 너무 차가울 것 같아 콘택트렌즈를 꼈는데, 렌즈 및 눈알이 얼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스노슈잉 중 경사로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스노슈즈를 맹신한 탓일까. 아무튼 넘어지면서 땅을 손으로 짚었는데, 눈이 장갑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 순간 손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눈이 너무 차가워서 손목이 얼어 끊어질 것 같았다. 얼른 장갑 안에서 눈을 털어내고, 주머니의 핫팩을 만져댔다. 하지만 영하 40도의 추위에선 핫팩도 무용지물이었다. '이렇게 동상에 걸리는 건가', 겁이 났다. 다행히 몇 분 뒤 고통은 사그라들었다.
옐로우나이프에선 장갑을 꼭 끼고 다녀야 한다. 특히 건물 외부의 현관을 드나들 때, 무심결에 맨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가 불에 덴 듯한 통증이 올라온다. 그리고 장갑은 무조건 제일 두꺼운 제품이어야 한다. 면장갑 위에 방한 장갑을 덧대는 것도 방법이다.
신체 절단(?)의 위기를 넘기고 다운타운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Boston Pizza에서 즐겼다. 미디엄 사이즈 피자에 고구마튀김을 시켰다. 별미가 딱히 없는 캐나다지만, 랜치소스와 곁들여 먹는 고구마튀김이 의외로 유명하다. 고구마튀김은 당연히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음식이다. 요는 고구마튀김이 아닌, 랜치소스다. 북미에선 랜치소스가 인기가 많다. 그리고 음식점마다 랜치소스 맛이 다르다. 어느 식당에선 단짠 크리미하고, 어느 식당에선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하다.
그리고 캐나다가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비싸고, 음식점에선 팁이 거의 필수라 가격이 세긴 하지만, 음식 양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여러 메뉴를 한꺼번에 시키지만 않는다면, 적당히 합리적인 선에서 다이닝을 즐길 수 있다. 만약 음식이 남았다면 억지로 먹지 말고, 남기지도 말자. 용기(container)를 달라고 해서 싸가면 된다. 저녁시간이 되면 길거리에 일회용기를 한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고물가에서 살아남는 지혜다.
일기예보를 보니 황색경보란다. 히트택에 기모바지, 방한바지를 덧대 입고 양말도 두 겹에 방한화를 신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핫팩도 준비해 간 모든 것을 아낌없이 터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두텁게 뒤집어썼지만, 어쩔 수 없이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손이다. 그냥 오로라를 눈으로 감상만 하겠다면 모르겠으나, 그럴 순 없지 않겠나. 찍어야 남고, 또 SNS에 올려줘야 하니까. 사진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을 때마다 고역이었다. 터치가 되는 장갑이 있다 한들, 버튼을 제대로 누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답답해서 벗기 마련이다. 최대한 빠르게 찍고, 핫팩이 그득 담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 게 최선이다.
우리는 달이 상현일 때 캐나다에 도착했다. 달이 점점 차오를수록 하늘은 더욱 밝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로라는 그야말로 불타올랐다. 오로라투어 일정이 전체 3일이었는데, 극적이게 날을 거듭할수록 하늘이 점차 열렸다. 딱히 묘사는 필요 없다. 사진을 감상해 보자.
마지막 오로라투어를 끝내고 새벽 1시 30분쯤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한 뒤 방한복을 반납하고 짐을 챙겼다. 옐로우나이프에서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가 새벽 5시 25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다운타운에서 공항까지는 단 10분 거리였고, 오로라빌리지에서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수속도 보안검색도 빠르게 끝났다. 워낙 공항이 작은 덕이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활주로로 나서는데, 한기가 비행기를 휘감고 있는 모습이 꽤나 멋졌다. 다른 행성의 비행장 같은 느낌이랄까. 비행기에 오르자 그제야 모든 긴장이 풀리며 잠귀신이 찾아왔다.
이렇게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캐나다 오로라 여행이 끝났다. 오로라는 머리를 맑게 비워준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새파랗게 질린 주식 계좌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국제 정세도 오로라를 보겠다는 일념에 그 순간만큼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하늘이 열리길 하늘에 기도하고, 오로라가 나타나면 환희에 비명을 지른다. 어른도 아이도, 남자도 여자도, 부자도 빈자도 오로라 아래에선 평등하다. 날이 흐리면 누구든 불행하고, 맑으면 누구든 행복하다.
캐나다, 평생에 한 번쯤은 꼭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