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하순 사건을 찾아 파출소를 돌다 흥미로운 얘길 들었다. 50일 전쯤 한 남성(이하 A씨)이 서울 종로의 모 휴대전화 액세서리 매장에 찾아와 100만 달러 지폐를 내밀면서 2만 원짜리 휴대전화 케이스를 하나 사갔다는 것이다. 1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10억 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당연히 가짜 돈이었다. 100만 달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 액면가는 100달러다. 500달러 짜리도 있었지만 1940년대에 발행 중단됐다. 1934~1935년에 한시적으로 10만 달러 지폐가 4만 2000장 정도 발행되긴 했다. 100만 달러 지폐는 기념품 등으로만 만들어졌을 뿐이다. A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100만 달러 가짜 돈을 내밀면서 100달러짜리 지폐라고 속였다고 한다.
종업원은 가짜 돈임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설령 진짜 돈이라 믿었다 해도 휴대전화 케이스 하나를 그런 큰돈을 주고 사겠다는 손님이 의심됐을 법도 한데 말이다. 나는 직접 가게에 찾아가 물었다. 그러자 종업원은 "남성이 단골 행세를 하길래 얼떨결에 받았다"라며 "거스름돈은 나중에 받으러 오겠다며 가게를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A 씨에겐 수배령이 내려졌다. A 씨는 어떤 혐의를 받을까. 우선 통용되는 화폐를 위·변조하거나 행사할 목적으로 이를 취득, 행사하면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형법 제207조~210조). 유가증권도 마찬가지다. 2021년 9월 컬러복사기를 이용해 10만 원권 자기앞수표를 위조, 스타벅스 등에서 커피 1잔을 주문한 뒤 거스름돈을 챙긴 30대는 이듬해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100만 달러 지폐는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다. 관할 경찰서 지능팀장에게 물었더니 "통용되지 않는 화폐를 이용해 물건을 사면 사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라고 했다. 즉 A 씨는 사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가게 폐쇄회로(CC)TV에도 찍혔다 하니 검거가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A 씨는 폰케이스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걸까.
그나저나 위조지폐는 점차 줄어드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한은이 화폐취급 과정에서 발견했거나 금융기관 또는 개인이 발견해 신고한 위조지폐는 총 150장으로 전년(176장) 대비 26장 줄었다. 1998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위조지폐 액면금액 합계는 196만 4000원으로 전년(199만 3000원) 대비 -1.5% 감소했다.
위조지폐 발견 장수는 5천 원권 75장, 1만 원권 43장, 5만 원권 23장, 천 원권 9장으로 집계됐다. 5천 원권은 과거 대량 위조범(2013년 6월에 검거)이 제작한 기번호 ‘77246’ 위조지폐 74장이 여전히 대량 발견되고 있으나, 이를 제외하면 신규 위조지폐 발견은 낮은 수준이다. 2022년 중 새로 발견된 위조지폐 기번호는 41개로 전년(69개) 대비 28개 줄었다.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하고 각종 모바일금융이 활성화되면서 현금 이용 비중이 감소한 영향이다. 한은의 '2021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를 보면 지급수단별 이용 비중(건수)은 신용카드 43.4%, 현금 21.6%, 체크·직불카드 18.1%, 모바일카드 9.0%, 선불카드·전자화폐 3.5%, 계좌이체 3.2%, 기타 1.2%로 나타났다. 현금 이용 비중(금액)은 2013년 34.8%에서 2021년 14.6%로 꾸준히 감소했다.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도 많아졌고, 현금으로 거래하더라도 스마트폰 터치 몇 번에 계좌이체가 가능해졌다. 나도 거의 모든 결제를 모바일금융으로 해결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은 네이버페이, 오프라인 결제는 삼성페이 하나면 충분하다. 현금은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사 먹을 때 빼곤 쓴 기억이 잘 없다. 2022년 설에 받았던 신권은 아직도 내 지갑 속에 고이 모셔져 있을 정도다.
게다가 CCTV 설치가 확대되면서 범인 검거도 쉬워졌다. 그리고 한은은 자신들의 위조지폐 관련 홍보활동이 주효했다고 자평했다. 만약 위조지폐를 발견했다면 가까운 경찰서나 은행(한국은행 포함)에 바로 신고하면 된다.
/한국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