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아즈카반의 죄수」 편을 보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동시에 진행되는 수업 여러 개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느냐고? 그에겐 '미스터리부(Department of Mysteries)에서 만든 '타임 터너'가 있어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9월 24일에 치러진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입사 필기시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A씨가 두 회사 필기시험에 모두 붙은 것이다.
A씨가 호그와트 재학생이고, 현실에서의 취업을 위해 잠깐 나왔다가 유혹을 이기지 못해 헤르미온느처럼 타임 터너라도 쓴 것일까?
아니다. A는 헤르미온느처럼 똑똑한 것은 맞지만 우리와 같은 머글이다. 대신 자신과 똑같이 똑똑한 쌍둥이 형제 B를 이용했다. 위즐리 쌍둥이 형제에 비유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시기는 5월 초쯤부터다.
'똑같이 생긴 사람이 두 시험장에 있었다'는 목격담이 나왔다는 건데, 아마 A를 아는 무리가 각각 A를 보고는 "A가 한은 시험 치러 왔더라" "무슨 소리야 A는 금감원 시험장에 있었는데?"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사실을 한은과 금감원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모 언론사 기사에 따르면 5월 둘째 주쯤 기자가 한은에 문의할 때까지만 해도 담당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에선 별별 일이 다 생기지 않는가. 그래서 '대리시험 의혹도 나온다'라고 기자가 담당자에게 재차 확인을 부탁했더니 "그런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확인하느냐"라고 대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소문이 쫙 퍼졌나 보다.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도 그렇고 서울대학교 에브리타임에도 관련 글이 올라왔다. 서울대에선 "후배님들 적게 들어오기 시작해서 퀄(리티) 떨어지니까 별 희한한 일이 생기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자 한은은 이달 15일과 16일 이틀에 걸쳐 감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사실로 밝혀져 부랴부랴 17일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했다.
쌍둥이 형 B가 A 대신 금감원 1차 필기시험을 쳐 합격했고, 이후 진행된 금감원 2차 필기시험과 1차 면접전형에는 A가 응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한은은 현행 채용 시스템상 본인 확인 절차를 충실히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A는 한은 채용 과정만큼은 본인이 직접 응시했다고 진술했고, 한은은 매 단계마다 신분증 및 필적을 통해 동일인 여부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대리 시험 발생 기관은 금감원이지, 한은은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는 A와 B의 진술일 뿐 경찰 수사에 따라 다른 사실관계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한은과 금감원은 이날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A와 B를 고발했다.
그리고 한은은 "유사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대리시험 등 부정행위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했다.
'불가능한 얘기'같아 보여도 현실은 언제나 더 극적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