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강남라인 경찰기자 시절 '묻지 마 폭행' 사건을 취재했던 적이 있다(이런저런 이유로 보도되진 못했다). 당시에도 이성에 대한 단순 혐오로, 혹은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남에게 해를 입힌 사건이 종종 뉴스에 나왔다. 최근 신림역과 서현역 사건을 보니 당시 기억이 암실의 사진처럼 스멀스멀 떠올라 개인적인 생각을 몇 글자 적어본다.
우선 당시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2018년 5월의 어느 날 서울의 모 지하상가에서 누가 사람을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트려 경찰에 체포됐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다. 그런데 경찰이 범행 동기를 묻자 가해자는 "하늘의 계시"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늘의 계시라니. 가해자가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있었다.
현장에 가봤더니 여기저기 사건의 흔적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참 곳곳에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눌어붙었다. 범행 당시 영상도 확인해야 했다. 서울시 산하기관 CCTV가 현장을 바로 비추고 있었지만,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선 영장 없이 CCTV 화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차선으로 상가 상인들이 직접 달아놓은 CCTV를 수소문했다. 다행스럽게도 한 식당에서 CCTV 열람을 허락했다. 각도가 좀 아쉽긴 했지만 한 카메라 화면 귀퉁이에 사건 일부가 포착돼 있었다.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한 남성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 황급히 일어나 도망친다. 누가 봐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뒤를 가해자가 쫓아온다. 피해자는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내려쳤다.
이 광경을 목격한 시민들이 주변에서 달려와 피해자를 둘러쌌다. 가해자는 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피해자에게 삿대질하며 윽박질렀다. 그러더니 얼마 뒤 유유히 카메라 앵글 밖으로 사라졌다. 시민의 신고로 잠시 후 경찰과 구급대가 도착해 피해자의 상태를 살폈다.
CCTV로 본 사건 당시 상황
뉴스로 만들기 충분한 영상이었지만 보도는 하지 않기로 결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누군가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일 뿐 온전한 의미의 묻지 마 범죄는 아니지 않으냐'며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일반적인 폭행사건이니 보도 가치가 덜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신이 말짱한 사람이 저지른 테러여야만 묻지 마 범죄가 성립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정상'과 '정신질환' 여부를 가르는 기준도 불명확하고, 무엇보다 묻지 마 범죄는 그저 비슷한 사건을 묶기 위해 편의상 붙인 이름일 뿐이다.
본질은 사적 원한 없는 불특정 상대방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테러 행위라는 점이고, 핵심은 범죄 증가 원인이 무엇인지, 예방이 가능한지 여부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지난 2013년 무차별 살상 범죄자 18명을 분석했더니 반사회성이 높은 누범자들이 9명, 조현병 등 정신장애 질환자가 6명 그리고 외톨이가 10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각각을 더해서 18이 나오지 않는다. 두 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교집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외톨이'이다. 일본에선 묻지 마 범죄 증가의 이유가 히키코모리 신드롬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회성이 결여된 채 고립돼 살아가는 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지면서 이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범죄도 늘었다는 것이다.
분명 현대사회에선 여건상 은둔형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예전에는 내재적인 폭력성이 있더라도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얼마간 성향이 변할 수 있었다. 동네에선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거나 숨바꼭질을 하면서, 주말엔 성당이나 교회 주일학교에 다녔다. 이 과정에서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면서 사회성을 길렀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면서 저출산이 뉴노멀이 됐다. 동네 또래 아이들은 점점 줄기 시작했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어린 나이부터 학원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 시간도 종교에 빠질 여유도 없다. 여기에 정보통신(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얼마든지 혼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이젠 현실에서 친구들을 사귈 필요가 없어졌다. 비슷한 사람끼리 온라인상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얼마든지 원하는 성향을 발현시킬 수 있다. 이들은 서로에게 주목받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최근 '살인 예고'가 유행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런 류의 범죄를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 우선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정신질환자를 집중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사법입원제도다. 타인을 해할 가능성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있는 경우 법원 등 사법기관이 강제 입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식의 대응은 인권에 반한다는 반론이 맞선다. 사법입원제를 도입할 경우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 조달도 숙제다.
여기에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도입도 논의된다. 정신질환자가 조기에 석방된 뒤 사회에 나오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니, 아예 못 나오게 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가석방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어 희망을 없애면 수감자들이 교도소 안에서 더 큰 행패를 부릴 거란 걱정도 있다. 범죄자를 교화시킨다는 교정의 취지가 무색해지기도 한다.
문제가 복잡하다보니 손에 가장 먼저 잡히는 방법은 치안 강화다. 물론 필요하다. 공공이 이용하는 곳에 방범용 CCTV를 확충하고, 유사시 경찰이나 소방인력이 빠르게 출동하도록 하는 것은 묻지 마 범죄 대응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녕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민의 정신건강을 어루만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회가 빠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스스로를 고립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사회는 너무 숨이 막힌다. 내가 지금 무난하게 잘 살고 있다면,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요행히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