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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Oct 07. 2023

내년 말, 디지털화폐가 등장한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란 말 그대로 중앙은행(Central Bank)이 발행하는 디지털(Digital) 형태의 화폐(Currency)다. '원화(₩)'인 건 똑같지만, 현금은 은행 계좌에 들어있는 반면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분산원장에 존재한다. 별개의 가치를 가진 가상자산(코인)과는 구분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 중앙은행의 절반 이상이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2030년까지는 24개국 이상이 CBDC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바하마와 나이지리아는 각각 2020년과 2021년에 CBDC를 도입한 바 있다. 다만 성공적으로 안착하진 못했다.


각 나라는 왜 CBDC를 실험하는 걸까?


실물 화폐 이용은 계속 감소하고, 경제 인프라는 디지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블록체인 기술의 개발과 보편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블록체인은 새로운 금융상품, 결제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ID 시스템, 기술 서비스, 에너지 분야 등에서 폭넓게 이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내년엔 토큰증권(STO)이 발행되면서 부동산이나 미술품 조각투자가 가능해진다. 이때 CBDC가 있다면 현금을 이용할 때보다 더 빠르게 거래할 수 있다. 토큰증권과 CBDC 둘 다 분산원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금을 이용한다면 이걸 분산원장에 올리는 과정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토큰화된 자산을 거래할 땐 토큰화된 돈을 사용해야 쉽고 빠르다 / 직접 그림

화폐 권력과도 관련이 있다.


민간에서는 현금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계속 만들고 있다. 통화정책 당국인 중앙은행 입장에선 이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 화폐의 흐름은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민간이 화폐권력을 쥐어서 부작용을 초래하는 걸 막아야 한다. 또, 테라·루나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중국도 2020년 10월부터 CBDC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부인하고 있지만, 민간 핀테크 기업인 앤트파이낸셜(알리페이)나 텐센트(위챗페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두 간편 결제 시스템은 중국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디지털위안화 로고

당장 뭐가 달라지나?


지금은 CBDC가 미래 통화 인프라로 쓸만한 지 시험부터 해보겠다는 것이지, 도입이 결정된 건 아니다.


일단 은행에서 '예금토큰'을 발행하기로 했다. 현재처럼 예금을 은행 계정에 두는 것이 아닌, 분산원장 상에서의 토큰으로 소지하게 된다는 의미다. 실험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내년 말부터 CBDC 예금을 들 수 있다.


예금토큰은 뭐가 다를까? '스마트 계약' 등 프로그래밍 기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돈에 조건을 달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자녀나 조카에게 "참고서 사 읽거라"라며 2만원을 줬다. 그런데 애들이 그 돈으로 서점에 가는지, 아니면 몰래 PC방에 가는지, 게임 아이템을 사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CBDC로 용돈을 지급할 땐 '도서 구입'을 목적으로만 결제되게 할 수 있다.

Microsoft Bing AI가 그려준 '디지털화폐용돈으로 책을 사야만 해서 좌절하는 고등학생'

또한 안정성이 더욱 높아진다. CBDC는 개별 은행의 결제망이 아닌 분산원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관리되므로 보안성과 감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밖에 여러 가지 용도를 상상해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진 안갯속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용처는 한국은행이 올해 11월 중에 공개하겠다고 한다. 얼리어답터가 되고 싶다면 한 번 예금토큰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은행이 CBDC 연구와 홍보에 열심인 이유는 뭘까?


이번 연구엔 국제결제은행(BIS)이 참여한다. BIS는 중앙은행 간의 통화결제나 예금을 받아들이는 등 각 나라 중앙은행의 관계를 조율하는 국제 협력기구다. 경제와 통화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이런 BIS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화폐를 같이 연구한다? 한은은 이걸 너무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CBDC는 화폐다. 미래의 화폐 시스템을 테스트하는 역할을 한국이 맡은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CBDC가 새로운 규범이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롤모델이 한국이 될 수도 있다. 한은의 담당 부서는 이미 세계에서 손꼽는 CBDC 전문가 집단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이 K-Pop뿐만 아니라 금융으로도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날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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