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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Oct 22. 2018

#01  엄마의 오래된 꿈



  큰방 벽에 기대어 먼저 자리를 잡은 엄마. 동생은 찰떡처럼 그 옆에 꼭 붙어 앉았다. 굵고 묵직한 기류 가운데 모두 아빠가 오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한 달 전부터 할 말이 있으니 춘천집에 오라 한 건지, 전화로는 안 되고 가족들 다 모이면 알려주겠다고 했던 엄마 말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해 질 무렵 서둘러 밭일을 마치고 가장 늦게 등장한 아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애꿎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한 가족이 둘러앉은 날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얼마 전에 내가 지역아동센터 일을 그만두게 되었잖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생기더라고. 조용히 기도도 하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어.”  


  엄마의 목소리는 느릿느릿하나 정확했다.

  18년 전 아빠가 귀농을 하게 되면서부터 엄마는 교회에서 목사로, 지역아동센터에서 장으로 일하며 억척같이 생계를 책임져왔다.


  “정말 딱 하나, 분명한 게 떠오르더라. 여행을 하고 싶어. 가능한 한 오랫동안.”


  나머지 말도 잊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


  하루 이틀 만에 툭하고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두 딸내미를 키우는 엄마, 두 여동생을 둔 큰 언니, 연로한 부모님을 보살피는 딸, 남편 몫까지 일 해내는 아내, 원장님, 목사님…. 송경서라는 사람에게 붙는 수식들과 유수같이 흘러간 그녀의 세월이 말해주었다.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우리 엄마 나이가 벌써 쉰셋이다.     








  여행을 다녀온 나중에서야 엄마는 그 당시 심정을 조금 더 설명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무리했던 거지. 지역아동센터 운영했지, 아픈 외할머니 챙겼지, 수빈이 챙겼지, 집안 일 했지. 너도 알다시피 지역아동센터에 일이 터지면서 여러 가지가 맞물렸던 것 같아.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았나 하는 회한도 왔고……. 지역아동센터 그만두면서 거의 한 달 정도 집에서 묵상하고 기도만 하면서 칩거생활을 했어. 그 과정에서 내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고. 어느 날 탁 하고 분명하게 ‘여행’이 가슴에 떠올랐어. 새로운 환경, 새로움에 대한 동경, 쉼…. 전후좌우 상황을 고려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답이 올라왔고. 그걸 현실로 실현하고 싶었던 거지. 나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여행할 자격 있다, 내가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하는 마음이다 보니 그때 그렇게 확고하게 여행에 대한 의사를 말할 수 있었던 거 같아.”


  예상치 못하게 수빈이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나도 가고 싶어. 나 고3 되면 입시 준비해야 하잖아. 생각만 해도 싫어. 막막해… 엄마가 여행이란 말 할 때부터 막 눈물이 나는데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나 여행 갈래. 내가 정말 꿈꾸던 거란 말이야.”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수빈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들은 아무 말을 잇지 못했고, 엄마는 잠시 후 나에게 의사를 물었다.


  “은빈이까지 셋이라면 같이 여행할 수 있을 거 같아. 은빈이 너도 여행할 생각이 있니?”


  “가면 갈 수는 있는데….”


  이 얼떨떨한 상황에서 나는 자꾸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와! 언니도 가면 아빠도 같이 가자!”


  수빈이는 금세 곧 여행을 떠날 사람처럼 표정이 바뀌었다.


  “아빠는 엄마가 한 이야기…… 미리 들었어?”


  나는 셋이라면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지금 처음 들어.”


  아빠는 왼손으로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만지며 땅바닥만 쳐다보았다.


  “수빈이 너는 여행 정말로 가고 싶니?”


  아빠가 낮게 내리 깔은 목소리로 동생에게 물었다.


  “응.”


  한 치 망설임 없는 동생의 대답에 아빠는 무언가를 골똘히 망설였다. 20여년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밭을 떠나본 적 없는 아빠는 짙게 한숨을 내리쉬었다.


  “일단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경서의 마음 전적으로 존중해. 꼭 여행을 떠나면 좋겠어. 여행은 셋이 가.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


  예상했던 돌덩이가 데구르르.


  “난 안가, 그럼.”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내 말에 나도 놀랐다.


  “난 아빠가 가면 가. 아니면 안 가.”


  굉장히 단호했다. 고개를 땅에 떨군 채 급기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빠가 또 혼자 떨어져 지내는 거 싫어. 난 우리 가족 또 떨어져 사는 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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