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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Oct 27. 2018

#02  열두 살 은빈이


  아빠 혼자 강원도 산골짜기로 귀농하면서 나랑 동생과 엄마는 안양에 따로 집을 구해 살았다.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창문에 반사된 붉은 노을이 집안 어귀를 물들이고, 열두 살이었던 나는 늘 혼자였다.

엄마는 평일에 지역아동센터 일로, 주말에 교회 일로 바빴다. 그나마 여유가 생기면 나보다 일곱 살 어린 동생 수빈이를 챙기는데 손이 갔다.

  나는 문제집 풀어놓으라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집에 오자마자 텔레비전을 켜고 과자를 까먹었다. 엄마가 일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열심히 공부하는 척 책상에 앉아 스탠드 불을 밝혀놓곤 했다.

우리들은 아빠가 없는 단출하고도 허전한 일상에 서둘러 적응했다. 아빠 집에서 지내시다 가끔 답답해지면 우리 집에 오셨던 할머니는 심심한 한낮을 보내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아빠 이야기로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얘, 은빈아. 아빠한테 농사 그만 지라고 해. 내 말은 절대 안 들어. 너는 딸이니까 네가 말하면 들을 거야.”


  “왜요?”


  “왜긴, 너희 아빠 안 그래도 멸치같이 말랐는데 그 고생해가지고 얼마 돈도 못 벌고, 왜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었는지 참. 에유. 속상해.”


  평생 아빠를 걱정하는 할머니가 측은했다.


  “할머니도 그렇고 고모들도 다 아빠 시골 간 걸 왜 그렇게 안 좋아해요?”


  “담배를 그렇게 피워대니 몸이 성하나. 농사가 얼마나 힘든데 그걸 어떻게 해. 혼자서 시골구석에서 살고 있는 거 보면 불쌍해 죽겠어.”


  “그래도 할머니, 아빠는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시골에 간 거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번에 아빠랑 전화했는데 아빠 잘 지낸다고 했어요.”


  어린 나는 씩씩하게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었지만, 속으로는 아빠가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면, 옛날처럼 한집에서 같이 살았으면 하고 바랐다.

  어쩌다 사람들이 아빠는 어디 계시냐고 물어보는 게 싫었다. 어린애가 어디서 배웠는지 아빠 없는 집은 사람들이 쉽게 얕잡아보니 없는 아빠를 집에 있다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한 것도 아닌데 나는 아빠 없는 아이처럼 마음을 움츠렸다.

  방학이 되면 일주일 정도 수빈이와 같이 아빠네로 놀러 갔다. 겨울에 두 볼때기가 발갛게 언지도 모른 채 신나게 눈썰매를 타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 앉으면 창밖에 손 흔드는 아빠에게 인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커튼 뒤에 숨어 토끼 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아빠를 혼자 두고 떠나 슬프다는 말을 웅얼거리곤 했었다. 아빠를 걱정하던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내 눈에 창밖에 홀로 서있는 아빠가 참 외로워 보였다.

  일찍이 나이랑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러웠던 나는 우리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게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바삐 생계를 잇는 엄마를 살폈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시골을 싫어해서 떨어져 살게 된 거라 원망하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하는 엄마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 아빠를 혼자 두겠다니. 셋이라면 여행할 수 있겠다는 엄마가 괘씸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이대로 영영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들었다. 나는 아빠를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아빠 안 가면 나도 절대 안가! 내가 그때 얼마나…”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울면서도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당황스러웠다.

  스물여섯,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성인이 된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열두 살 은빈이가 징징거리며 흘려야 했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 학교를 떠난 19세 고3 동생
/ 교회를 떠난 53세 목사 엄마
/ 밭을 떠난 55세 농부 아빠
/ 집을 떠났던 26세 오춘기 나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1년 간의 유럽가족여행기는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옵니다.

사진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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