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첸 Apr 20. 2019

#26  어른이 어른답기에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12지파의 아이들은 어른 같았다. 아기의 표정은 오묘하게 인자한 할머니의 웃음을 닮았고, 부엌에서 칼질하는 10살 이샤의 모습엔 위엄이 묻어났다. 착착착 일정한 크기로 야채를 다듬는 수준이 주부처럼 안정감 있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나 이모를 따라 소소한 집안일을 돕거나 공동체 안에서 홈스쿨링으로 성경말씀과 플루트, 바이올린을 배웠다. 다른 때에는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고, 들꽃으로 목걸이를 만들거나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다.

  우리 가족은 애가 애 같지 않아 놀랐다. 대게 아이들이라면 눈에 띈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목청을 내보이며 떼를 쓰거나, 자기 물건을 다른 친구가 집으면 뺏으려 하는 행동을 할 텐데, 이곳 아이들은 먼저 양보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을 때에는 기다릴 줄 알았다.

  수빈이는 그런 아이들을 안쓰러워했다.


  “그 다섯 살짜리 꼬마 있잖아. 아까 걔가 뛰다가 넘어졌거든? 근데 그 순간에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는 거야. 아~ 그 표정을 보는데 왜 이렇게 불쌍한지.”


  아빠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나도 여기 애들 보고 처음엔 좀 아니다 싶었어. 너무 어른스러우니까 이상하더라고. 어른들이 아무리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도 아이들을 너무 일찍부터 어른들의 길을 가도록 하면 그것도 폭력이야. 근데 여기서 자란 청년들 봐봐. 아이들이 모두 기품 있고 잘 자랐어. 인사하는 표정이나 걸어가는 자세, 자기 이야기를 하는 법… 걔네들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지.”


  아빠 말처럼 지난 보름간 울고 웃는 아이들과 생활하며 내가 배운 건 세상 모든 걸 녹일 수 있는 순수함이었다. 오히려 무엇이 아이다운 건지 되묻게 되었다.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는 건 어른이 어른답기 때문이 아닐까? 어른은 자신과 상대방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저녁 게더링 시간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공동체를 나가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오래된 고민이었는지 바로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게더링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독 말과 표정이 적었다. 내가 아는 건 아주 오래된 멤버라는 사실이 전부였다.

  그녀는 가장 먼저 자신의 잘못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계를 고백했다. 스스로 참회하고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했지만 끝내 자신은 이 공동체에서 지낼 수 없겠다는 말을 침착하게 이어갔다. 오랜 세월 공동체에 대한 문제점과 사람들 간에 쌓여온 갈등들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녀의 말 행간에는 그 어떤 비난이나 원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른 구성원들의 반응이 염려되었다. 일반 회사를 같이 다니던 동료가 어느 날 그만두겠다고 해도 서운한 법인데, 하나의 뜻을 가지고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던 가족이 떠나는건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을 동반할 테니….

  다음 날 오후, 책상과 의자만 있던 큰 방 하나가 마치 연남동 아기자기한 카페처럼 변신했다. 푹신한 매트와 색색깔 쿠션이 놓인 좌식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간식들과 예쁜 장식품들도 보였다.


  “오늘 뭐 하나요?”


  방 앞을 기웃거리던 나는 같은 방을 쓰는 할머니, 틱샤에게 물었다.


  “오늘부터 여기서 특별한 게더링을 해요. 어제처럼 공동체 안에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우리는 이렇게 공간을 꾸미고 거기서 모임을 해요. 공간이 가진 느낌이 따뜻해야 사람들도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으니까요.”


  틱샤는 문 입구부터 방 안쪽 군데군데에 촛불을 켰다.

  이 특별한 게더링은 공동체 구성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첫날은 어려움을 가진 이를 위한 시간으로 주로 모두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질문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그 기한은 정해진 게 없으며 주인공에 따라 이틀이 되기도 하고 몇 시간 만에 끝나기도 한단다. 그다음으로는 어린이들을 포함한 공동체 모든 구성원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 기간 동안 어떤 것들을 느끼고 알게 되었는지 나누며, 한 명으로부터 시작된 이 시간을 모두의 경험이 되도록 한다고 했다. 그마저도 시간을 정하지 않고 개개인이 충분히 풀어내도록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3일 후, 마지막으로 주인공을 위해 축하하는 의식을 가졌다. 모두들 찬송을 부르며 마당 앞 작은 연못으로 나왔다. 그간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갔는지 모르지만,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편안해진 분위기를 느끼며 나는 그녀가 공동체를 떠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동체 식구들 모두가 기도해주는 가운데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연못 깊은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네 사람은 연못 안에 서서 잠시 기도했다. 그녀의 얼굴은 차분했고, 모든 걸 내맡긴 듯 담대해 보였다.

  순간 그들은 몸 전체를 물속으로 풍덩 던졌다. 몇 초가 흐르고,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민 그들의 얼굴에 기쁜 미소가 한가득 피어났다. 새로운 존재가 되어 다시금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연못 밖에 다른 식구들은 그들을 따뜻한 품으로 꽉 껴안아 주었다.

  그 모습들을 보며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던 그녀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는 걸 보며 되려 내가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의 어둠을 끌어안았고, 그 어둠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짐 지우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내게 물었다.


  ‘나는 나의 어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나의 어둠을 무시하고 있었다. 사소하다고 치부하며 움직이고 싶어 하는 어둠에게 꼼짝하지 말라 명령하곤 했었다.

  그 누구도 그녀를 몰아세우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아야겠다는 단단한 마음을 먹었다. 천천히 나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이라 여기며, 엉망진창인 마음에게 ‘왜’라고 묻지 않고 그저 ‘그렇구나’ 인정해주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평소처럼 12지파 공동체 식구들은 춤과 노래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섯 살짜리 꼬마와 흰머리 할아버지, 아주머니, 청년 모두 다 같은 아이들처럼 행복해 보였다.

  매일의 나를 있는 그대로 풀어놓을 수 있는 곳, 곁에서 묵묵히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함으로 차올랐다.

 








19세 여동생은 학교를 자퇴하고,
53세 엄마는 교회를 그만두고,
55세 아빠는 밭을 맡기고,
26세 나는 가족과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성질부리는 큰 딸이 302일 간 기록합니다.

숨겨둔 장면은 여기에서
https://www.instagram.com/travel_of_family/    


매거진의 이전글 #25  낮 동안 자신과 화해한 사람만이 깊은 잠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