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버전의 IT 역사
한 번 정도는 제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을 거 같아서 여기에 적어봅니다.
저는 컴퓨터를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제가 디자인을 포함한 IT를 접한 건 98년부터 인데 당시엔 닷컴 버블이었고 당시 웹마스터란 직군이 선호 직업 1위였습니다.
당시엔 매크로미디어 플래시 3가 알려지고 슬슬 뜨려고 했고 IE랑 넷스케이프가 세상을 점령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엔 혼자 html 코딩하고 디자인하고 플래시까지 하던 시기였고 누구나 당연한 거라 생각했던 시절입니다.
그러다 저는 *allaire 사의 콜드퓨전을 처음으로 접하고 홀딱 반했습니다. 콜드퓨전은 태그 기반의 서버사이드 언어 겸 서버였는데 디자이너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제품이었습니다. 당시엔 asp, perl cgi, php가 있었습니다. 여하튼 저는 콜드퓨전의 미래를 보았고 플래시랑 같이 열심히 했습니다. cfug(
coldfusion user group meeting)도 열심히 참석하고 BCIT에서 플래시랑 콜드퓨전 데이터 연동 사례도 발표하고 정말 적극적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콜드퓨전이랑 플래시를 배우고 전 agentis.com 이란 회사에 입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dye & durham이란 회사에 인수되었지만 당시에 저는 주니어 콜드퓨전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합병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나가야만 했습니다. 인수 합병 당시 인상 깊었던 건 계약을 위해 성경책을 사내에서 찾았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 회사는 200명 정도의 법률전문 온/오프라인 서비스 회사였는데 유일하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마치 외국영화에서나 볼법한 전형적인 외국 회사 분위기였네요.
*이상하게 주위에서 들은 것도 그렇고 퇴사 얘기를 퇴근시간에 하는걸 자주 봤습니다. "내일부터 출근 안 하셔도 돼요.. " 뭐 이렇게..
그리고 저는 monkeymedia.net 이란 회사에서 플래시 직군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엔 로버트 펜너라는 액션 스크립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권고 해직을 당하고 그 친구 자리를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퇴사 후 로버트 펜너는 easing 함수를 만들어 유명해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모션 그래픽에 사용하는 easing은 로버트 펜너가 만든 거라 보시면 됩니다. 당시 그는 플래시 4 버전에서 drop&drag 개념의 쇼핑몰을 만들었습니다 ㄷㄷㄷ.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콜드퓨전을 도입하게 되었고 소프트웨어 회사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당시 콜드퓨전이 심취한 저는 몇몇 회사를 동경하였는데 하나는 hi(harmony integrated)랑 catouzer(후에 evolutionB로 개명)였습니다. catouzer라는 회사에 대해 조금 얘기를 하자면 대표는 Cameron Siguenza 랑 Tanaka Akio라는 일본인이 컴퓨터 임대업을 시작으로 생긴 회사입니다. 그러다 콜드퓨전을 접하고 콜드퓨전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그리고 대박을 냅니다. Akio 씨는 직원들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쓴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후에 Akio 씨는 회사를 정리하고 macromedia japan cto 자리를 역임했다 지금은 VC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이전에 피처폰 인터페이스는 플래시 라이트라는 플래시 기반이었는데 최초로 플래시가 적용된 건 NTT 도코모 모바일에 적용한 걸로 아는데 Akio 씨의 역할이 아주 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단하신 분.
내가 얻은 것:
외국회사에서 2.5년 근무
서버사이드 언어(콜드퓨전)
그리고 저는 한국에 귀국해서 콜드퓨전 관련하여 한국 매크로미디어와 일을 조금 하다 브런트 남찬우 대표님이 만든 맨지온 인터랙티브에서 약 1년간 RIA 개발하다 2004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웹을 한국에서 한 게 아니라서 한국 디지털 에이전시에 대해 인맥이나 아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여하튼 저는 RIA(플래시 기반 애플리케이션)가 미래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플래시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그러다 과도기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은 모든 걸 플래시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모바일 플래시를 하게 되었는데 이게 인건비가 엄청 세서 많은 회사들이 여기에 올인한 걸로 기억합니다. 모바일 플래시는 디바이스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최적화가 관건이고 예상 못한 엄청난 이슈가 많아서 고생스러운 일인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아이폰이 국내 출시하자마자 판도를 뒤바꿔버리고 동시에 저는 UX라는 걸 접하게 되었습니다. UX는 가늠쇠가 아닌 망원경을 달고 총을 쏘는 느낌이었습니다. 첫 번째 UX 프로젝트 후 제가 느낀 건 인포그래픽의 필요성이었고 때마침 인포그래픽이 국내에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에 프로토타입 시장이 커지고 와이어프레임, 인터랙션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시대가 왔고 지금의 제가 여기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네요.
이외에 저는 충남대학교에서 UI를 가르치고 있고 블로터 아카데미에서 UX 디자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 만나서 제가 가진 경험을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서버사이드, 그래픽 디자인, 인포그래픽, 모션그래픽, GUI, UI, 인터랙션을 다 접하면서 UX 디자인 적응을 잘하지 않았나 생각드네요.
http://robertpenner.com/ea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