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산다는 것
사람들은 누구나 한 가지씩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누군가는 운동을 잘하고, 누군가는 노래를 잘 부르고, 누군가는 남을 잘 웃기고, 누군가는 타인의 감정을 잘 헤아린다.
그 모든 재능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이들은 그들의 예술 작품이나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유머를 타고난 이들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으며, 창의력이 뛰어난 이들은 기발한 발명품으로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기에, 그중에 하나만 잘해도 인정받을 수 있다. 하다못해 밥을 많이 먹는 재주로도, 늦게까지 장가를 못갔다는 걸로도, 건달 출신이라는 걸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이 정말 그렇게 굴러가진 않는다. 사람들은 각기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 재능들은 동등하게 인정받지 못한다. 더 쳐주는 재능이 있고 덜 쳐주는 재능이 있다. 그리고 세상이 가장 높이 쳐주는 재능은 공부다. 유머를 타고난 이들은 코미디언이 된다. 그런데 코미디언이라고 하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가수는 어떨까? 축구선수는 어떨까? 100명은 될까? 50명은? 30명은? 좀 더 마이너한 분야, 설치 미술가나 컨템포러리 음악 평론가, 봅슬레이나 싱크로나이즈 선수라면 어떨까? 3명은 꼽을 수 있을까? 운동 선수로, 예술가로 인정받기는 이렇게 힘들다.
그런데 공부는 다르다. 매년 1천 명의 신입생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 3천 명에만 들어도 SKY에 갈 수 있다. 경제활동 인구를 18세에서 65세라고 본다면, 이 연령대에 들어가는 서울대생은 47년 * 1,000명 = 47,000명이다. 운동선수나 예술가로 인정받으려면 자기 분야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야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엘리트로 인정받으려면 47,000명 안에만 들면 된다.
세상은 웃기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보다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을 더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중 대부분은 회사원이 될 것이기에,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책상 머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삶을 살 것이기에, 책상 머리에 앉아서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내 인생에 별로 쓸모도 없는 지식들을 외우는 걸 잘하는 학생들은 인정받는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공부를 잘 하게 태어났다. 물론 더 잘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매번 1등만 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반에서 3등 밖을 벗어나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시험이 끝난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몇 번 문제에 정답이 뭐였냐는 질문을 받는 학생 중에 하나였다. 어릴 적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 동창들을 찾아가 김현민은 어떤 아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늘 사랑받고 인정받았다.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기특해했고, 부모님은 자랑스러워했으며, 친척이나 친구네 엄마들은 우리 부모님을 부러워했다. 반장을 한 적도 많았고, 시험을 잘 봐서 학원 전단지에 이름이 붙은 적도 있었다.
물론 때때로 불행할 때도, 슬플 때도 있었다. 형이 내가 레고 블록으로 만든 성을 부쉈을 때, 친구들과 술래 잡기를 하는데 나만 계속 술래에 걸렸을 때 나는 슬펐다. 하지만 적어도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서 무가치한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가치 있는 인간이었다. 나는 성공할 거고, 행복한 삶을 살 거였다. 여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