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은 그가 세상에 던진 질문이다.
올해 5월, 내 첫 번째 책 <페미니스트들에게 던지는 치사하고 쪼잔한 질문들>이 나왔다. 페미니즘이라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에 대해 다루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 책이었다. 이 책을 만드는 데는 3년 반이 걸렸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책을 읽고 무수히 많은 지면을 썼다 뒤엎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내 개인사에 대한 책이다.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기업가도 아니고, 요즘 핫하다는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도 아닌, 일개 제약 회사 영업사원인 나 따위의 이야기다. 이 책의 초고를 쓰는데는 3개월이 걸렸다. 참고 자료는 딱히 없다. 그냥 쓰고 싶은대로 썼다. 그냥 내 이야기인데 무슨 참고자료가 필요하겠는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쓴 책도 아니고, 설득을 하기 위한 책도 아닌데,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데.
한 사람의 삶이란 그가 세상에 던진 질문이다. 자동차란 무엇인가? 사람이나 물건을 편리하게 운반하는 도구이다. 스마트폰은 무엇인가?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한 도구이다. 의자란 무엇인가? 편하게 앉기 위한 도구다. 사물의 본질은 그 사물의 쓰임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종대왕은 누구인가?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다. 석가모니는 누구인가? 중생을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려 한 사람이다. 라이트 형제는 누구인가? 비행기를 만든 사람이다. 어떠한 사물의 정체성이 그 사물이 쓰이는 용도, 즉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느냐로 규정되듯이 사람의 정체성 역시 그가 이 세상에 어떤 보탬이 되었느냐로 규정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조금 난감하다. 우리는 세상에 딱히 보탬이 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글을 창제하지도 않았고, 비행기를 발명하지도 않았고, 중생을 구제할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다. 굳이 비슷한 걸 찾자면 직업 정도를 들 수는 있겠다. 세상의 모든 직업들은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작건 크건 세상에 보탬이 되니 말이다. 공무원이라면 시민들의 편의에 도움이 되겠고, 나 같은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은 국민 건강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썩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다. 누구는 한글을 만들었고, 누구는 비행기를 발명했는데 나는 겨우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라니. 내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건 겨우 제약회사 매출 전표라니.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런 목적 없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물은 모두 제각기 쓰임새를 갖고 만들어진다. 그리고 쓰임새를 다해서 폐기될 때까지 그 쓰임새로만 쓰인다. 자동차는 사람이나 사물을 나르는데 쓰이고, 스마트폰은 의사소통을 하는데 쓰인다. 정상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못을 박는데 스마트폰을 쓰거나 집 대신 자동차에서 살진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창조주인 부모님은 어떤 목적을 갖고 우리를 낳지 않았다. 그냥 낳았다. 부모님은 우리의 쓰임새를 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용도로 쓰일 것인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삶은 고되고 세상은 가혹하다. 금수저라고 해도, 경국지색의 미남미녀라고 해도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다.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은 질문을 던진다. 세종대왕이라면 “왜 백성은 글을 배워서 지식을 익히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고, 석가모니라면 “왜 인간은 생로병사라는 고통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들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고, 그 결과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직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다. 아마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글을 만든 사람이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 기억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질문은 있다. 돈이건 외모건 가족이건 친구건 살면서 뭐라도 결핍을 느꼈을 것이고, 그 결핍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충족된, 어떠한 결핍도 느끼지 못할, 심지어 모든 것이 너무나 철저하게 완벽해서 재미가 없고 권태롭다는 생각조차 감히 할 수 없을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내가 세상에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다양한 정체성을 거쳐왔다. 나는 부모님의 자식이기도 했고, 학생이기도 했고, 공군 5482 부대의 행정병이기도 했고, 제약회사 영업사원이기도 했고, 나는 솔로 4기 정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삶의 궤적을 지나는 동안 이 질문은 늘 내 곁에 있었다. 평생 고민해온 주제고 앞으로도 놓지 않을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첫 번째 책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훨씬 중요하다. 첫 번째 책이 페미니즘에 대한 내 견해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책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3년 반 동안 고민했다면 이 책을 쓰기 위해서는 33년 동안 고민했다. 이 책은 내가 쓴 책 따위가 아니다. 나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