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대한 풀리지 않는 난제
"내가 좋아하는 이성 vs 나를 좋아해주는 이성"
이건 남녀 관계에서 풀리지 않는 난제 중 하나다. 전통적으로는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는 게, 여자는 자기를 좋아해주는 남자를 만나는 게 더 낫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대두되고 전통적인 남녀 성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이성에게 접근해서 구애를 하고, 여자는 그 마음을 받아준다는 전통적 연애관 역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여성도 자기가 좋아하는 남성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쟁취할 수 있는데 왜 수동적인 입장에만 머물러야 하냐는 것이었다.
얼마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연애에 적극적인 편이 아니다. 먼저 다가가서 호감을 표현하고, 여자의 OK사인을 얻어내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래서 연애를 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부담스럽지 않을지, 욕심부리다가 친구로도 못 지내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고민을 하는 사이에 이미 다른 놈들이 다 채갔다. 그래서 생각했다. 왜 남자만 먼저 여자한테 다가가야 하는 걸까. 여자들은 좋겠다. 나도 가만히 앉아서 오는 여자들 채점 좀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그런데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가 고백하고 여자가 받아주는 게 맞다. 반대의 경우에는 도저히 관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극히 평범한 남자다. 여자가 먼저 호감을 가질 정도의 남자가 아니다. 거절당할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그 호감을 겉으로 표현해야할 정도의 남자는 더욱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운이 좋게도 그런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물론 사귀자는 말은 내가 했지만, 그 전에 나에 대해 아주 높은 확률의 호감을 표현해준 이성과의 만남이었다.
시작할 때는 좋았다. 나 역시 누군가를 좋아해본 경험이 있고, 그 마음이 좌절되어 상처를 받았던 경험도 있다. 아주 많이. 그래서 날 좋아해주는 누군가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나 따위를 좋아해주는 고마운 사람을 만났으니 앞으로 오랫동안 예쁘게 만나야지 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너무 많이 불안해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지 뭐. 나도 겪어봐서 다 아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 불안감의 정도는 남자인 내가 겪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 역시 연애에 소극적이며,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큰 편이었지만 여자가 느끼는 불안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나의 마음을 증명해서 그녀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주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금방 헤어졌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자기는 이런 식의 관계를 시작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 상대방이 더 좋아해서 만났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자기가 더 좋아해본 적이 없다고?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이 불안감을 느껴왔는데?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이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워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처음이니까 그렇게까지 불안한 거겠지. 내가 15살 때 겪은 걸 너는 30살이 넘어서 겪는 거니까, 이 감정에 대한 대처는 내가 15살이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어떤 감정들에 있어서는 나 역시 그렇게 미숙할 테니까.
사람들이 연애를 시작할 때는 남자가 더 많이 좋아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딱히 여자에게 하는 것도 없으면서 불안해하기만 할 것이다. 그 쥐꼬리만한 표현에 마음이 움직일 여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게 맞는 것 같다. 나도 불안하지만 그냥 내가 불안한 편이 나은 것 같다. 나는 피가 마를 것 같은 느낌이라면 그녀들은 정말로 말라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