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비 Sep 18. 2023

찐따 남자라서 다행이다

외로운 여자에겐 사기꾼이 들러붙는다

SNS에 여자 지인이 포스팅을 올렸다. 어떤 남자가 자기를 갖고 놀았단다. 남자와 주고 받은 카톡, 통화기록, 전 여자친구의 증언 같은 것들이 캡쳐본으로 올라왔다.


처음 본 게 아니다. 전에도 몇 번 있었다. 유부남도 있었고, 약혼녀가 있는 남자도 있었다. 세상에 멀쩡한 남자도 많을텐데 어떻게 저런 남자들만 골라만나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보다보니 남자로 태어난 게 다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기가 없는 남자다. 이유는 딱히 없다. 키가 작은 것도 아니고 못생긴 것도 아니고 옷을 이상하게 입는 것도 아니고 매너가 없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인기가 없다. 그냥 인기가 없어서 인기가 없다. 여자를 충분히 갖고 놀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갖고 놀 줄을 모르고, 그래서 여자들이 보기에는 재미가 없다. 말도 잘하고, 돈도 잘쓰고, SNS에 돌아다니는 남자가 하면 안 되는 행동 같은 것들도 안하지만 섹시함이 없다. 그래서 인기가 없다. 그래서 나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도 혼자다.


그래서 여자가 부러웠다. 남자는 여자를 갈망한다.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남자는 행동한다. 말을 걸고, 먼저 연락하고, 데이트 신청을 하고, 돈을 내고, 고백을 한다. 여자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다. 적당히 괜찮은 남자가 적당히 호감을 표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못 이기는 척 받아주면 된다. 그러니까 여자는 연애 경험이 없어도 된다. 남자를 사로잡는 대화법, 남자들이 좋아하는 패션, 남자들이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들 따위 몰라도 된다. 어차피 남자가 알아서 맞춰줄테니 말이다. 그게 부러웠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기 없는 남자다. 그래서 여자를 못 만나고 있다. 그래서 외롭고 때로는 우울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돈을 날린 적도 없고, 자살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정신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사랑한 여자도 없었고, 미칠 듯이 사랑한 적도 없었고, 큰 돈이 오갈만큼 깊은 관계를 맺지도 않았으니 그럴 일이 없었다. 나는 0일뿐, 마이너스는 아니다. 


그런데 여자는 다르다. 우울하고 외로울 때도 남자들이 다가온다. 물론 그녀들의 황량한 내면을 감싸줄 수 있는 좋은 남자가 다가온다면 너무나도 좋겠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듯, 외롭고 우울한 여자에게는 사기꾼, 바람둥이, 양아치 같은 놈들이 다가온다. 여자는 그들이 내뱉는 달콤한 말과 그럴싸한 행동에 넘어가버린다. 그러다 다친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보다는 그냥 외롭고 우울한 게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스쳐가는 생각일 뿐이다. 내일도 모레도 나는 외롭고 우울하고 ㅈ같을 것이다. 사람이란 원래 그렇다. 지구 반대편에서 수십만명이 죽어 나가도 당장 내가 힘든 게 제일 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솔로 출연은 결혼에 도움이 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