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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y 19. 2024

악몽의 고추파티

소셜 미팅 잔혹사

소셜 미팅을 다녀왔다. 12명의 남자가 12명의 여자와 10분씩 대화를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 3명에게 연락처를 주는 방식이다. 나는 3장의 카드를 모두 썼고, 1장의 카드를 받았다. 내가 연락처를 준 세 사람 중에서는 한 사람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 역시 나에게 연락처를 준 한 사람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소득은 없었지만 달랑 15,000원 내고 12명의 여자와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니 가성비가 괜찮은 것 같아서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가봐야지 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 적지? 왜 겨우 한 장이지? 열두 명의 여자가 각각 12명의 남자 중 3명의 남자에게 카드를 사용했다면, 평균 3장 아닌가? 물론 존나 잘 생기고 전문직에 말빨까지 좋은 남자가 있다면 7~8명, 심지어는 12명 모두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평균은 3명 아닌가? 내가 평균적인 키에 평균적인 외모, 평균적인 직장을 가진 남자라면 3명 정도는 기대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겨우 1명이지? 내가 이 중에서 제일 덜떨어진 남자이기라도 한 건가? 


대한민국 20대 남자의 평균 키는 173.7cm다. 그리고 나는 175cm다.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균보다 조금 크다. 아마 대한민국 남자 중에 50%이상은 나보다 키가 작을 것이다. 30대의 평균 세전 연봉은 4,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내 연봉은 6,000만 원 대 중반이다. 성과급을 합친다면 7,000만 원대가 될 수도 있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인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연봉이다. 나보다 많이 버는 사람보다는 적게 버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얼굴이나 성격은 각자 개인 취향이니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수치화할 수 있는 능력치들에 있어서 나는 평균을 밑돌지는 않는다.


그래서 옆자리에 있는 남자에게 슬쩍 물어봤다. 나는 한 장 받았는데 많이 받으셨냐고. 여자가 열두 명이나 있는데 도대체 누가 다 휩쓸어간 건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그는 "그래도 받긴 받으셨네요."라고 대답했다. 자기가 몇 장 받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조심히 가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어쩌면 다음주에 또 볼 수도 있겠군요. 그때는 서로 모른 척하는 걸로 해요.




15호가 나다.

그런 생각을 하다 그날 참석한 미팅 소개글을 봤다. 그리고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남자들 중에 대부분은 나보다 키가 작거나 연봉이 낮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남자 중에서는 나는 하위권이라는 것이다. 소개글에는 오늘 참석했던 남자와 여자들의 리스트가 있었다. 나이 / 키 / 직업 / 간단한 소개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17명 남자들 중에 175cm인 나보다 작은 남자가 딱 1명 밖에 없었다. 내 키는 17명 중에 16등이었다. 그리고 17명 중 8명이 180cm이상이었다. 대한민국 성인 남성 평균 키는 173.7cm이지만 여기 모인 남자들의 평균 키는 180cm였다.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대기업 중에서도 간판만 대기업이지 우리 회사보다 돈 적게 주는 회사도 많다. 그리고 이 리스트에는 대기업, 중견기업, 공기업 하는 식으로 뭉뚱그려져 있을 뿐 정확히 어디 대기업이고 어디 공기업인지는 안 나온다. 하지만 적어도 이 리스트 상으로는 중견기업에 다니는 나는 하위권이다. 애초에 승산이 없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 리스트를 봤다. 20대 여성의 평균 키는 161cm. 17명 중에 161cm가 안 되는 여자는 6명이었다. 산술적으로는 절반인 8명이 나와야 하지만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표본 집단에 따라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의 오차였다. 그냥 '오늘은 키 작은 여자들이 많이 없었나보다, 나는 아담한 여자가 좋은데 다음 번에는 조금 더 많이 나오려나?' 할 수 있을 정도의 오차였다.




단체 미팅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성욕이 강하다. 그래서 훨씬 활발하게 이성에게 접근한다. 길거리에서 여자에게 헌팅을 하는 사람, SNS에서 처음 보는 이성에게 DM을 보내는 사람, 소개팅 어플에 가입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다. 이번에 내가 나갔던 소셜 미팅도 마찬가지다. 그냥 아무나 가입하라고 하면 80%이상 남자만 모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유료 서비스다. 15,000원을 내야 한다. 기껏 돈내고 왔는데 다 남탕이라면, 80%의 남자가 20%의 여자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면 남자들이 농민봉기를 일으킬 것이다. 여자들도 자기들이 눈길 한 번 줄 가치도 없는 격 떨어지는 남자들과 말을 섞으며 시간을 낭비하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쭉정이는 빼고 알곡들만 모아서 해주길 바랄 것이다. 


그러면 주최측은 뭘 해야 하는가? 80명의 남자와 20명의 여자 중에서 60명의 남자를 걸러야 한다. 아예 미팅 장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컷을 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성비를 1 대 1로 맞춰줘야 한다. 컷을 하는 기준은 당연히 스펙이다. 남자 키는 최소 174cm이상, 연봉은 최소 5,000만 원 이상, 직업은 최소 중견기업. 그 커트라인을 지키는 문지기가 나인 거다.


다른 곳엘 가도 마찬가지다. 나이트클럽에 가면 여자는 바로 입장이 가능하지만 남자는 웨이팅을 해야 한다. 클럽에 가면 남자는 못생기거나 나이가 많거나 스타일이 구리면 입뺀(입구뺀찌)을 당한다. 사교 동호회에 들어갈 때 남자에겐 연봉, 직업, 키, 나이 등 조건을 걸지만 여자에게는 밝은 성격, 좋은 인상 등 있으나 마나한 조건만 건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자 80 대 여자 20의 정글의 법칙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결국 어디를 가도 낙원은 없는 것 같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쉬운 입장일 수밖에 없고, 여자를 쟁취하려면 다른 수컷들을 짓밟고 올라서는 수밖에 없다. 스펙으로 찍어누르건, 될 때까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도끼질을 하건. 한시도 고추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족속으로 태어난 게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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