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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y 08. 2024

19기 모솔 광수, 넌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 특유의 자기 혐오에 대하여

지난 나는 솔로 19기에서 가장 핫했던 인물은 단연 옥순(94년생 중장비 회사)과 상철(91년생 건설회사), 옥상 커플이었다. 하지만 연애 연구가의 관점에서 그들은 흥미로운 연구 대상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인싸이기 때문이다. 패션 센스와 사교성이 좋고 사진을 잘 찍는 남자, 예쁘고 날씬하고 리액션 좋은 여자가 연애를 못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형적인 인싸인 두 사람이 지금까지 연애를 못한 게 미스테리라면 미스테리일 것이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광수였다. 솔로들이 무전기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메시지를 보낸 날, "너는 좋은 사람이야."이라는 영숙의 말에 광수는 눈물을 보였다. 왜 그랬을까? 연애에서 좋은 사람이란 말은 칭찬이 아니다. 대개는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마땅히 거절할 말이 없을 때, 상처를 덜 주기 위해 이런 핑계를 댄다. 광수도 저런 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차였을 것이다. 그런데 광수는 왜 그 말에 감동을 받았을까? 광수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왜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걸까?


※ 물론 나는 광수를 모른다. 같은 출연자이지만 출연 시기가 2년도 넘게 차이나기 때문에 직접적 교류를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를 본 적도, 말을 섞어본 적도 없다. 이 이야기는 모두 나의 경험과 생각들을 광수에 대입한 뇌피셜일 뿐이니 재미로만 읽도록 하자.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시인 윤동주의 작품 [쉽게 씌어진 시]다. 여기서 윤동주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이 때, 일제에 맞서 싸우기는 커녕 원수의 국가인 일본에 유학와서 "육첩방"에서 부모님의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시나 쓰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이란 그렇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그 간극의 넓이만큼 불행을 느끼게 된다. 시의 배경이 되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독립이라는 두 글자만 믿고 강대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안에는 자부심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게 그들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그들의 신념을 온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 대척점에 있는 친일파들도 나름대로 행복했을 것이다.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서 내 가족 잘 건사하겠다는 자기들의 신념에 충실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는 이미 부패하고 시대에 뒤떨어져서 가만히 둬도 망할 나라였다며 자기 합리화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기 신념대로 살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제에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연약하고 소심한 기질로 인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방구석에서 글이나 쓰며 자기 혐오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윤동주와 같은 이들도 있을 거다. 아니면 그냥 가족들이랑 배부르고 등따숩게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쓸 데 없는 일에 가산을 탕진하고 가세를 기울게 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불행했을 것이다. 자기들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수는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천주교인으로서 갖고 있는 그의 신념 중 하나는 혼전순결이다. 여색을 탐하고, 성욕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짓을 하기보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따라 깨끗하고 경건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신념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성관계도, 연애도 하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남자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성기가 곧추서있는, 늘씬하고 매끄럽게 잘 빠진 여자가 미니 스커트를 입고 지나가는 걸 보면 본능적으로 눈이 돌아가는, 하루에 일백 번도 넘게 섹스 생각을 하는 남자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는 자기의 신념과 삶이 일치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내면에는 신념이 두 개다. 그것도 절대로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는 두 가지의 신념이 동시에 존재한다. 천주교라는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부여받은 금욕이라는 신념과 XY염색체로부터 부여받은 "예쁘고 어리고 쭉쭉빵빵한 여자를 만나서 원없이 따 먹어라."라는 신념. 광수는 도대체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그가 입으로만 혼전순결을 말하는 얼치기 신자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앞에서는 깨끗한 척 고고한 척 하면서 뒤에서는 여신도의 치맛속을 더듬을 생각이나 하는 위선자였다면, 아니면 야동을 보면서 자위라도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애초에 금욕을 할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 성욕에 흔들리는 자신을 부끄러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수컷 털없는 원숭이로서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아니면 조금 둔하고 어리석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기 안에 있는 야수와 같은 성욕을 모른 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진정으로 깨끗하고 고결한 남자라고 믿었을 것이다.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 없는 자신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색을 탐하며 짐승 같이 살아가는 남자들을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범생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살아온 유형의 사람이다. 당연히 혼전순결이라는 가르침도 최선을 다해서 따랐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뒤에서도 구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에도 일백 번씩 일어나는 성욕을 잠재우려 치열하게 노력해왔을 것이다. 짐승이 되기에 그는 너무 점잖고 착하다.


 그리고 똑똑하다. 예민하고 섬세하다. 자기 성찰과 사색을 즐겨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러니까 알 거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내 몸 속에도 여느 남자들과 같은 짐승의 피가 흐른다. 후카다 에이미가 내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유혹하면 나도 이겨내기 힘들 거다. 내가 지금까지 순결을 지켜온 건 분명 내 의지였지만, 일부는 여태껏 순결을 잃을 상황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순결을 지켜온 게 아니라 강제로 순결을 지킴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혐오했을 것이다. 이성과 본능. 금욕과 성욕. 성스러움과 속됨. 대척점에 있는 가치 무엇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그는 번민하는, 욕구에 초연하지도 그렇다고 짐승이 되지도 못하는 자신을 미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좋은 사람이야. 내가 한 말을 꼭 기억해."


 영숙의 이 말에 광수가 눈물을 보인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인간은 원래 완벽하지 못하다. 세상에는 완벽한 인간과 불완전한 인간이 있는 게 아니다. 불완전하면서 지가 완벽한 줄 아는 인간과,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인간이 존재한다. 광수는 후자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나아질 수 있다. 부족함을 알기에 고칠 수 있다. 또,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더러운 인간들인 게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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