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기 옥순의 위대함과 불안 요소
뜬금없이 17기 옥순(90년생, 흑염소 농장 운영)이 이슈다. 18기가 끝나고 19기까지 끝나서 20기를 하고 있는데 때 아닌 17기가 회자되고 있다. 나솔사계(나는 솔로 사랑은 계속된다) 때문이다. 나솔사계 한 번 더 특집(전 출연자들끼리 커플 매칭을 하는 특집)의 남자 출연자들이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출연자로 17기 옥순을 언급했다. 15기 영수도(85년생 회계사), 17기 영수도(85년생 삼성전자), 18기 영호도(86년생 건설회사) 모두 17기 옥순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현재 방송중인 20기 영수도 17기 옥순을 언급했다. 물론 촬영시점에 방송되던 기수가 17기라서 17기 출연자들이 더 주목받긴 했겠지만 그 중에서도 다른 출연자가 아닌 옥순만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걸 보면 남다른 매력을 가진 건 분명해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남자들이 17기 옥순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로 17기 옥순 같은 여자를 만난다면 정말 좋기만 할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 물론 내가 저런 여자를 만나봐서 쓰는 글은 아니다. 이 글은 3%의 경험과 97%의 상상으로 썼다.
세상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돈이 많으면 좋을 거다. 자본주의 세상의 모든 것은 돈으로 환산된다. 그렇기에 돈이 많으면 뭐든지 살 수 있다. 명품백이나 외제차, 아파트 같은 유형의 것들뿐 아니라 명예나 사람의 마음, 커리어 같은 무형의 것들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돈을 노리고 사기꾼이나 꽃뱀, 아첨꾼들이 꼬여들 수 있고, 유산을 두고 자녀들끼리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여자한테 인기가 많아도 좋을 거다. 일본 야동에나 나올 것 같은 예쁘고 쭉쭉빵빵한 여자들이 나랑 섹스 한 번만 해달라며 달려드는 상상, 남자라면 누구나 해봤을 거다. 하지만 인기가 많다고 무조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세상 모든 여자가 날 좋아하더라도 내 몸은 하나다. 그렇기에 그 모든 여자를 사랑해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거절을 해야 한다. 상처를 줘야 한다. 내게 마음을 표현해준 고마운 사람이 내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을 보이고, 심지어는 삶을 등지려 하는 걸 지켜보게 될 수도 있다. 그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예쁜 여자도 마찬가지다. 예쁜 여자를 만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붙고, 그녀와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게 된다. 예쁜 여자는 건강과 행복, 성공까지 가져다주는 만병통치약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쁜 여자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예쁜 값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원한다. 그래서 예쁜 여자에게 구애를 한다. 오마카세도 사주고, 명품백도 사주고, 용돈도 준다. 예쁜 여자들은 그런 호의에 익숙하다. 그래서 어지간한 거에는 감흥이 없다.
300만 원 짜리 백이야? 어머 고마워. 근데 지난번에 만난 남자는 500만 원 짜리 백 사줬는데? 자기는 지난 번 그 남자보다 200만 원 어치 덜 사랑하는 거구나?
그래서 남자들은 예쁘지만 연애 경험은 없는 여자를 원한다. 비교할 전 남친이 없는 여자를 원한다. 모든 게 처음이라 뭘 해줘도 놀라워하고 감동하는 여자를 원한다. 맘스터치나 새마을식당을 데려가도 오마카세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여자를 원한다.
그런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 치고, 논의를 진행해보자. 정말로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런 여자를 만나면 행복할까? 아닐 거다. 그런 여자는 십중팔구 성질이 더럽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에 환장한 족속들이다. 예쁜 여자가 싸가지 없으면 도도한 거라고 하고, 예쁜 여자가 멍청하면 백치미라고 하고, 예쁜 여자가 돈이 없으면 내가 그녀의 백마탄 왕자가 되어주겠다고 한다. 예쁘다는 어드밴티지는 그 모든 디스어드밴티지를 극복할 만큼 강력하다. 그런데도 연애를 못했다면, 그렇게 예쁜데도 아무도 그녀와 사귀길 원치 않는다면 얼마나 성격이 안 좋은 걸까? 얼마나 눈이 높은 걸까? 얼마나 배경이 안 좋은 걸까?
17기 옥순의 위대함은 그것이다. 예쁜데 남자를 안 만나봤다. 그래서 순수하다. 그러면 남자들은 의심할 거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연애를 못해봤는지. 하지만 17기 옥순에게는 그 의구심을 벗겨줄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 그건 그녀의 직업이다. 그녀는 세종시에 있는 집성촌에서 흑염소 농장을 운영한다.
"우와~ 예쁘다!"
"저렇게 예쁘면 남자 많이 만나 봤겠지?"
"아냐, 안 만나봤대."
"저렇게 예쁜데? 성격이 안 좋나?"
"안 좋긴? 얼마나 조신하고 여성스러운데."
"그럼 학력이 안 좋나?"
"무슨 소리야? 종로 해커스 토익 강사 출신인 거 몰라? 토익 만점이래!!"
"그럼 뭐지? 겨드랑이 냄새가 심한가? 아니면 대머리인가? 그런 게 아니라면 저렇게 완벽한 여자가 남자를 안 만나봤을 리 없잖아!"
"바보야! 세종시에 있는 집성촌에서 흑염소 농사를 짓는다잖아! 아예 동갑내기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이잖아!"
이렇게 되는 거다. 비유하자면 17기 옥순은 조금의 감가상각도 일어나지 않은 완벽한 환경에서 보관된, 주행거리 0km에 사용감도 없는, 연식만 지나서 2천만 원에 살 수 있는 벤츠S클래스 같은 여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17기 옥순 같은 여자를 만나면 정말 좋을까? 물론 좋은 점이 더 많을 거다. 예쁜데 착하고 순수하기 까지한, 거기에 지성미까지 겸비한 여자를 마다할 남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17기 옥순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연애를 해보지 않은 순수한 여자라는 그 자체다. 남자를 많이 만나본 여자들은 눈이 높다. 연봉 1억 버는 남자를 만나본 여자에게는 연봉 8천이 쉬워보이고, 2억 버는 남자를 만나보면 1억이 쉬워보인다. 그래서 점점 많은 걸 바라게 된다. 남자들은 거기에 맞추길 버거워한다. 그래서 남자 많이 안 만나본 여자를 원한다.
하지만 눈이 높아진다는 건 자기가 원하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착한 남자를 만나지만, 착한 남자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다음 번엔 나쁜 남자를 만나본다. 그러다 상처를 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착한 남자의 헌신과 나쁜 남자가 줄 수 있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사이에서 최적의 비율을 찾게 된다. 군대에서 사격을 하기 전에 영점 조절을 하듯이. 그래서 남자를 많이 만나본 여자들은 원하는 게 명확하다. 그걸 충족해주기만 하면 된다. 연봉 1억 버는 남자는 흔치 않다. 여기서 대부분의 남자는 걸러질 것이다. 하지만 1억을 벌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뜬구름 잡는 복잡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를 안 만나본 여자들은 다르다. 연애 안해본 여자들이라 해서 남자에 대한 기대치가 없는 게 아니다. 자기가 남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아직 모를 뿐이다. 남자를 안 만나봤다고 속물적이지 않고 순수한 게 아니다. 속물근성이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들은 아직 영점조절이 되지 않았기에 자기가 뭘 원하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뜬구름잡는 소리를 한다. 연애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된다.
17기 옥순도 그런 모습을 보였다. 17기 옥순은 분명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자가 정도는 있어야 한다거나, 외모가 먼저 끌려야 한다거나, 웃겨야 한다거나 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옥순이 외모를 안 보고, 돈을 안 본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자기가 원하는 연애와 이성에 대한 상이 구체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옥순은 영점조절이 되지 않은, 뜬구름잡는 이야기를 한다. 옥순은 처음에 의사였던 광수에게 호감을 가졌다. 하지만 광수가 다른 여자를 알아보려 하는 걸 보고 호감이 달아나 버렸다. 이상한 건 아니다. 이 남자가 나에게 얼마나 헌신적이고 진심인지는 여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다. 하지만 여기는 솔로나라다. 최종 선택을 하기 전까지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보고 자기에게 가장 알맞은 짝을 만나라고 4박5일의 시간을 준 것이다. 그리고 광수가 그렇게까지 다른 여자들에게 눈을 돌렸던 것도 아니다. 순자와 데이트를 나가긴 했지만 옥순과는 온도차가 분명했다. 순자 앞에서는 껄렁껄렁한 나쁜 남자처럼 굴었지만 옥순 앞에서는 진실되게 행동했다. 광수의 행동은 정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상 범주를 벗어났던 건 오히려 연애에 대한 옥순의 비현실적 기대다.
남자를 더 많이 만나봤더라면 조금은 더 관용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좋다고 미친 듯이 달려들던 남자도 익숙하고 편해지다보면 돌변한다는 걸, 처음에는 미지근하지만 나중에는 더 뜨거워지는 연애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꼭 남자가 처음부터 자기만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당장 만날 남자가 없어서 대충 만나본 경험이 있다면 결벽에 가까운 연애관을 조금은 타협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