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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y 22. 2024

20기 정숙의 삭삭슥슥, 생각보다 멋진데?

정숙 쉴드 치기 2탄

첫 데이트에서 정숙은 옥순과 함께 짜장면을 먹었다. 그리고, 결의를 다졌다. 삭삭삭삭, 슥슥슥슥 해서 남자의 마음을 자기에게 넘어오게 만들겠다고 했다. 이 새끼 안 넘어오면 남자 아니다, 하는 당찬 포부까지 밝혔다.

그 삭삭삭삭, 슥슥슥슥이 뭔지 궁금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역시 몸으로 떼우기 전략이었다. 근거는 충분했다. 이번 기수에서 정숙이 남자 출연자와 뽀뽀를 한다는 떡밥, 이 새끼 안 넘어오면 남자 아니라는 파격적인 발언, 남자들이 원하는 걸 알고 거기에 맞춰주면 된다며 옥순에게 했던 조언, 개인 쇼핑몰에 올라온 파격적이고 섹시한 사진들을 볼 때 충분히 그렇게 예측할 만 했다. 남자들이 원하는 거? 섹스지. 이 새끼 안 넘어오면 남자 아니라고? 섹스 어필하면 당연히 넘어오지. 존못뚱녀가 아닌 이상.

그런데 아니었다. 정숙의 삭삭삭삭은 생각보다 세련된 방법이었다. 그리고 멋졌다. 일단 솔직했다. 영호에게 어떤 포인트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정확히 말했다. 잘 생겼다, 나에게는 너 밖에 없다.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할 남자는 없다. 정숙은 옥순에게 했던 자기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했다. 남자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여기부터다. 정숙은 호감을 표현하되 을이 되길 자처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은 때로 매몰비용이 된다. 내가 이만큼 마음을 보여주고 호의를 베푼 게 아까워서라도 꼭 얘랑 잘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비굴해진다. 세상에 여자가 얘 밖에 없는 것 마냥 빌빌댄다. 상대방이 나와 했던 약속을 어겨도, 내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무조건 용서한다. 그러다보면 차인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재미 없고 가치 없는 남자로 보이는 거다. 뭐야, 얘는 만날 여자가 오죽 없으면 이렇게 나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빌빌대? 하면서.

(↑↑↑↑위 사진 참고) 그런데 그런 모습이 없다. 영호에게 호감을 표현하되 끌려다니지 않는다. 바로 직전에 짜장면 먹은 주제에, 원픽인 영호에게 감히 대든다. 영호가 하는 말이라도 자기 생각과 다르면 과감하게 No를 말한다. 영호는 정숙처럼 쿨하고 솔직한 여자와의 연애에서 매번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정숙에게 마음을 열기가 두렵다고 했다. 여기서 가장 무난한 답은 공감을 해주는 거다. "아, 내가 겉으로는 좀 세보이긴 하지? 하지만 속은 여리고 순수한 여자야. 앞으로 네가 불안해하지 않게 더 잘할게." 하는 식으로. 하지만 정숙은 쉽게 가지 않는다. 그건 과거에 네가 만났던 사람들일 뿐, 나는 그녀들과 다르다고 한다.

(↑↑↑↑위 사진 참고)다음 장면에서도 그렇다. 첫 데이트에서 자기를 선택하지 않은 거에 대해 정숙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하자, 영호는 그럼 다음번에 다른 남자를 택하라고 한다. 아마 본심은 아닐 거다. 정말로 정숙이 다른 남자를 택하길 바라서 하는 말은 아닐 거다. 그냥, 그 정도로 미안하다는 뜻일 거다. 그러니 여기서는 "아냐 ㅎㅎ 됐어. 다음번에 같이 재밌게 놀다 오자."하는 게 제일 무난하다. 하지만 정숙은 그렇게 쉽게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과 보내기에도 짧은 솔로나라에서의 5박 6일을 누군가에게 복수하는 일로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영호와 말싸움을 해서 이기자는 게 아니다.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기에겐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는 거다. 좋아하는 영호가 하는 말이라고 다 받아줄 만큼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정숙은 영호에게 긴장감을 준다. 지금 나는 네가 좋지만, 네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은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한다.

(↑↑↑↑위 사진 참고) 이 발언도 백미였다. 너의 자기소개가 내 마음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말은 얼핏 칭찬으로 들린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거스른다"라는 워딩이다. 거스른다는 말은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쓴다. "전하! 어찌 소신이 전하의 어명을 거스르겠나이까!!!"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한 결혼 생활은 평탄하기 어려워."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너의 자기소개가 내 마음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말은, 내가 갑이란 뜻이다. 면접자가 면접관의 심기를 거슬러선 안 되듯, 직원이 사장의 명령을 거슬러선 안 되듯, 나는 너를 평가하고 너의 생살여탈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방금 전까지 짜장면을 먹었던 언더독 정숙은, 이 한 단어로 영호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물론 이런 여자와의 결혼 생활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냥 유순하고 내 말 잘 들어주는 여자와 사는 게 더 평탄하고 안전할 수도 있다. 정숙의 연애가 보통 200일 내외에서 끝났다는 건 그런 이유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 불화만 일으키고 다니던 사람이었다며 직장 동료들이 블라인드에 했던 증언들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방송에 나온 모습을 봤을 때, 인간으로서의 정숙은 꽤나 멋지다. 적어도 섹스어필로 남자를 잠자리에 데려가는 걸 연애 잘하는 걸로 착각하는 골빈 여자는 아닌 게 확실해 보인다. 이번주에도 활약을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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