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비 Jun 02. 2024

나는 솔로 출연진, 카메라 앞에서 왜 저럴까?

방송 이미지와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

나는 솔로 출연진들이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행동하면 카메라 꺼지면 얼마나 더 개차반이겠냐는 것이다. 영자(88년생, 교육공무원)이 이성적 감정이 없다는 표현을 했는데도 끝없이 집착하던 광수(87년생, 금융회사)도, 상철에게 기우는 옥순(94년생, 중장비회사)의 마음을 돌리려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하던 19기 영식(84년생, 신발사업)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숙(87년생, LG전자)이다. 카메라 앞에서도 남자에게 노골적으로 섹슈얼한 플러팅을 할 정도면 실제로는 어느 정도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실제로 만나보면 꽤나 멀쩡하다. 방송에서 봤던 빌런을 기대하고 모임에 나가보면 오히려 실망스러울 정도다. 뭐야, 겨우 이 정도였어? 이 정도로는 우리 707베이비 영철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는걸?


왜 그런 걸까? 어그로를 끌고 인스타 팔로워를 늘려서 공구팔이를 하거나 유튜버로 전향하려고 저러는 건 아닐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웃라이어들은 제외하고, 여기서는 정도로 이상하지는 않은 중위권 빌런들 위주로 이야기를 해보자.)




1. 예쁜 표정만 짓고 있기엔, 촬영 시간이 너무 길다.


나는 솔로에 출연하면 당연히 긴장이 된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캐리어를 끌고 등장해서 나무에 매달린 이름표를 뜯을 때, 촬영용 드론과 수십 명의 스탭들이 모여있는 걸 볼 때 내가 전쟁터에 들어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카메라 앞이니까 표정 관리 잘해야지, 방송에서 욕 먹거나 망신당할 짓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당연히 한다.


하지만 그 긴장은 대체로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1~2시간 스튜디오에서 찍고 헤어지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다. 예쁜 표정 짓고 예쁜 말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24시간이다. 새벽 두시까지 제작진이 날 따라다니며 내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는다. 두시부터는 거실이나 침실에 설치된 카메라가 날 지켜본다. 그렇게 5일이다. 120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자기 본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인간은 (아마도) 없다. 시간이 지나고 다른 출연자들과도 친해지다보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고 원래 하던 대로 행동하게 된다.


2. 예쁜 표정만 짓고 있기엔, 상황이 너무 ㅈ같다.


[오징어 게임]이 드라마가 아니라 리얼리티 예능이라고 상상해보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해서 움직인 사람은 진짜로 총으로 쏴서 죽이고, 줄다리기를 해서 진 사람은 진짜로 옥상에서 밀어버린다고 상상해보자.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을까? 카메라 앞에서 저딴 표정을 짓냐고 출연자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여기는 그런 곳이다. 물론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출연진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어서 그들의 본성이 드러나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솔로]와 [오징어 게임]은 꽤나 비슷하다. 소개팅에 나갔는데 여자가 내게 관심이 없어보인다면 어떨까? 보통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다. 굳이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다른 여자 만나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반은 여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여자가 여섯 명 밖에 없다. 그리고 대개 하루 이틀 지나면 대부분 러브 라인이 형성된다. 현실적으로 내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한두 명이다. 촬영에 완전히 몰입한 출연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한두 명의 여자가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더욱 고약한 건, 여기에는 연애 밖에 할 게 없다는 거다. 사회에서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연인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회사의 직원이나 동호회 회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다양한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연애만 한다고 가족이나 직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연애를 안해도 된다. 만날 사람 없으면 일이나 자기계발에 집중해도 된다. 그런데 여기는 다르다. 이 곳에 있는 5박 6일 동안에는 회사일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연애에만 모든 역량을 쏟아붓게 된다. 그러다보면 사람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짓들을 하게 된다. 여자 앞에서 찔찔 짜기도 하고, 여자에게 집착하기도 하고, 경쟁자에 대한 험담을 하기도 한다. 젠틀하고 예쁜 모습만 보여주기에 여기는 너무 ㅈ같다.




3. 그래서 예쁜 표정만 짓고 있으면 좋아해줄 거야?


빌런형 출연자들을 욕하기 전에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왜 보는지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리는 아이돌 같이 올망졸망 예쁘게 생긴 출연자들이 드라마 대본에서 따온 것 같은 예쁜 말들만 주고 받는 걸 보려고 이걸 보는 건가? 인플루언서 지망생들이 샵에서 풀 메이크업 받고 나와서 몸매 자랑하는 거 보고 싶은 건가? 아닐 거다. 내 친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찌질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진심을 다해 짝을 찾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 아닌가?


그런데 그걸 욕하면 어떡하나? 집착이나 가스라이팅, 섹스 어필을 해서라도 저 사람을 갖고 싶으니까 저렇게까지 하는 거다. 그러니까 욕을 먹어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다. 비판을 받아야 하는 건 그마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모인 여섯 명의 남자나 여자들보다 화면 밖 시청자들을 더 신경쓰는 사람들, 여기서 짝을 찾을 생각을 하기보다 나중에 디엠을 받거나 소개팅을 할 생각을 먼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못된 거다.


그걸 잊는다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출연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될 것이다. 짝을 찾으러 온 사람들 말고 인플루언서가 되어서 공구 땡기러 온 사람들. 실제로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