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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n 28. 2024

인간관계에서 선을 넘는 일의 어려움

살다보면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축구를 때는 슛을 해야 한다. 그래야 골이 들어가고 점수가 난다. 아무리 패스워크가 잘 맞고, 드리블을 잘하고, 수비를 잘해도 슛팅을 때리지 않으면 점수가 나지 않고, 경기에 이길 수도 없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팔아야 돈이 된다. 나중에 더 오르지 않을까, 하면서 갖고만 있으면 묶인 돈일 뿐이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서로 호감이 있고 친밀한 관계라도 고백을 안 하면 만년 남사친일 뿐이다. 그러다 다른 남자가 채가면 그 때 가서 후회해봐야 늦었다.


영업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영업사원과 의사는 비즈니스 관계다. 영업사원은 자기 회사에 무슨 약이 있는지 설명하고, 의사는 살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비즈니스를 넘어 인간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제약회사에서 파는 약의 90% 이상은 제네릭, 즉 카피약이다. 다른 회사에도 다 있는 약이다. 효과도, 성분도, 부작용도, 용량도 다 똑같다. 그 중에 우리 약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영업사원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다. 나 스스로가 시중에 있는 수 많은 약 중 우리 약을 써줄 이유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친해져야 한다. 누군가는 주말에 원장님과 골프를 치러 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목적은 결국 같다. 친해지려는 거다.


하지만 그러려면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슛팅을 할 때는 골대 밖으로 공을 날려먹을 걸 각오해야 하고, 주식을 팔 때는 나중에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고백을 할 때는 차일 걸 각오해야 한다. 사람과 친해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선을 넘어야 한다. 비즈니스 관계라는 선을 넘어 인간적인 관계가 되려면 비즈니스적인 질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원장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
"원장님, 주말에는 보통 뭐하시나요?"
"원장님, 자녀분들은 몇살 정도 되셨나요?"


이런 질문들은 항상 리스크를 수반한다. 원장님이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라면, 오늘 기분이 좋다면, 혹은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면 이런 질문들에 흔쾌히 답해줄 것이다. 운이 좋다면 너는 주말에 뭐하냐고 물어보며 더 대화를 이어나갈 여지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안 그럴 수도 있다. "주말에 그냥.. 아무것도 안해요.", "서로 바쁜데 쓸 데 없는 얘기는 하지 마시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다음번에 만나기가 껄끄러워진다.




그래서 이 일이 어려운 것 같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열었는지, 선을 넘으려는 시도를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신하지 못하면서 선을 넘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병원 문 앞에 서서 고민한다. 오늘은 뭐라고 말을 걸지, A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뭐라고 대답하고 B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뭐라고 대답할지 머릿속으로 알고리즘을 그린다. 빵이라도 사가면 잠깐이라도 분위기가 풀어지지 않을까 싶어 1층에 있는 카페에도 들린다. 하지만 실전은 대체로 알고리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C나 D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건 A나 B보다 호의적인 답변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씩은 병원을 나오면서 '아오, 멍청이 왜 그딴 소릴 해갖고!'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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