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에서 인사이드아웃2를 봤다. 1도 봤는데 오래 돼서 무슨 내용이었나 잘 기억은 안 난다. 그냥 콕 찌르면 눈물부터 나는 슬픔이와 건드리면 폭발하는 버럭이가 나왔던 정도만 기억난다.
재미있었다. 서사도 재밌었고 생각할 거리도 있는 영화였다.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 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걸 보면서 인간의 뇌에 본능을 관장하는 파충류의 뇌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현대 인류의 뇌가 공존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서 기쁨은 없어지나봐
가장 와닿았던 대사는 이거였다. 어린 시절 주인공 라일리를 지배하던 건 기쁨이라는 감정이었다. 어린 라일리에게 세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친구들, 강아지, 하늘을 떠가는 구름, 그 모든 게 신기했다. 그런데 열세살 사춘기가 되면서 불안, 따분함, 당혹스러움, 질투라는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기쁨이는 불안이에게 리더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엄마 아빠도 그렇다. 엄마 아빠의 내면에도 분명 기쁨은 존재하지만 엄마 아빠의 주된 감정은 더 이상 기쁨이 아니다. 엄마를 지배하는 건 슬픔이고, 아빠를 지배하는 건 분노다. 그래서 아빠들은 늘 화를 낸다. 밤 늦게 연락이 안 되는 딸이 걱정될 땐 "너는 정신 머리가 있는 년이냐! 어딜 쳐 싸돌아다니다 지금 들어오는 거야!"하면서 화를 내고, 반에서 1등을 한 아들이 자랑스러울 때는 "반에서 1등? 다음번에는 전교 1등해라!"한다.
나도 그런 것 같다. 기쁜 일이 없다. 물론 하루 종일 우울하기만 하다는 뜻은 아니다. 신규 거래처를 뚫었을 때도 기쁘고, 새로 올린 글이 조회수가 잘 나오고 좋아요가 많이 찍힐 때도 기쁘다. 하지만 그런 거 말고, 세상에 대한 경탄이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정도의 강렬한 기쁨을 느껴본 건 아주 오래 전이다.
그 대신 나를 지배하는 건 질투와 불안이다. 서른여섯.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다. 가능성이 아니라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나이이다. 하지만 내겐 아직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세상을 놀라게 할 글을 쓰고 싶었고, 남들과 다른 빛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이룬 건 없다. 그렇다고 세상이 제시하는 인생의 관문들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도 못했다. 장가도 못 갔고, 직장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불안하다. 내가 긁지 않은 복권이 아니라 그냥 꽝일까봐.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니게 삶이 끝나버릴까봐.
평소에는 그걸 모른다. 내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기 때문이다. 모두들 기쁨을 잃어버리고 불안과 질투에 휩싸여서 썩은 동태 같은 눈깔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내가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아기들을 볼 때 그렇다. 그 오동통하고 짤막한 손과 발이 꼼지락 거리는 걸 볼 때, 주름 한 점,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피부를 볼 때, 아무 걱정도 계산도 없는 꾸밈없는 웃음을 볼 때 그렇다. 내게는 이미 사라져버린 그런 것들을 볼 때, 나는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옛날 친구들을 볼 때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웃는 법을 잃어버린 썩은 동태 같은 어른이 되었지만 우리에겐 추억이 있다. 세상 모든 게 신기하고 즐겁던 시절을 함께 보낸 추억이 있다. 그들을 만날 때, 이미 수십 번을 반복했지만 질리지 않는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잠깐이나마 그 시절로 돌아간다.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찐웃음을 짓게 된다.
여행을 가고 싶다. 일본이나 중국 말고,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들, 낯선 풍경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이다. 굳이 그런 돈지랄을 왜 하나 했다. 여행을 가서 견문을 넓히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기르고 온다고 하던 놈들 때문이었다. 2~3박 동안 관광지나 돌고 인스타용 사진이나 찍을 거면서 무슨 견문과 식견 운운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기쁨을 느끼고 싶은 거다. 경탄하고 싶은 거다. 캐리어를 들고 공항 버스에서 내릴 때, 평소와 다른 풍경과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설렘을 느끼고 싶은 거다. 한 달 치 월급과 피 같은 휴가를 쏟아부어서라도 우리는 잠깐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