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젊음이 버거워 스스로의 젊음을 거세한 청년의 이야기
지하문학 유출
아, 나는 어설픈 노인이자 괴상한 젊은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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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역의 에스컬레이터는 늘 고장 나있었다. 그리고 꼭 역으로 올라가는 것만 고장 났다. 내려오는 건 늘 멀쩡한데 말이야. 나는 하얀 개량한복을 펄럭거리며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지팡이로 짚으며 올라갔다. 세로로 난 에스컬레이터의 홈에는 먼지가 많이 쌓여있었다. 터벅터벅. 내 차림새는 누가 봐도 할아버지였지만 계단을 올라가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늘 그렇듯 성수역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왜냐하면 나 같은 어설픈 노인이 젊은이들을 마주치면 금세 마음이 요동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딱딱거리는 지팡이 소리와 함께 초록빛 도는 성수역의 매끈한 바닥을 빠르게 걸어가면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내 차림새 때문에 그렇겠지.
내 나이는 성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청년들과 몇 살 차이 안 날 테지만 그에 비해 옷차림은 30년 정도 차이나 보였다. 누렇게 빛이 바랜 하얀 개량한복. 어디 브랜드인지도 모르는 지하상가에서 산 검은색 운동화. 그리고 번들거리는 진갈색 지팡이와 6.25 참전용사 모자까지. 나는 이런 퀴퀴한 차림으로 멋지게 빼어 입은 청년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내가 청년파업에서 처음 한 일은 정관수술이었다. 세상은 저출산이니 저출생이니 하지만 나는 젊음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덕분에 재생산이라는 책임감을 가볍게 벗어던질 수 있었다. 정관수술을 하러 가니 의사가 내게 물었었다. 미혼인 사람이 왜 정관수술을 하냐고. 조금만 더 신중히 생각해 보면 어떻겠냐고. 나는 그런 의사의 말에 그냥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내 눈을 보며 부모님과 얘기는 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거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실 아이를 갖고 싶었다. (물론 내가 낳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키울 자신이 없었다. 이상하게 결혼과 출산 생각을 하면 온몸에 힘이 빠졌다. 평생 나 하나 살 집도 못 살 텐데 무슨 아이 생각을. 집 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칠 때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왜 그때 바보 같이 비트코인을 안 사서 이 꼬라지가 났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B기업에게서 서류 탈락 알림을 받았을 때였다. 나는 편의점에서 4캔 묶음으로 할인되는 캔맥주를 사들고 집에 걸어가고 있었는데 오른편 약국의 통창 너머로 TV가 보였다. TV 뉴스 속 헤드라인은 유명 정치인 자녀의 채용비리 사건.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이를 못 낳지 않을까.
덜컹덜컹. 전철은 성수를 지나 왕십리 쪽으로 달려갔다. 단기 알바를 마친 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같이 사는 룸메이트도 출근해서 없을 것이고 방에서 노래나 들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죽일 수 있었다. 저녁은 가끔 룸메이트와 시켜 먹거나 녀석이 야근이라 늦게 들어오면 마트에서 사 온 재료로 제육볶음이나 비빔밥을 해 먹었다. 하지만 녀석은 거의 매일 야근을 했기 때문에 요리하기 귀찮은 날은 대충 라면으로 때웠다.
지금 사는 집은 룸메이트가 마음에 안 들긴 해도 소중한 집이었다. 나는 청년을 파업하고 난 뒤 젊음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 본가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무작정 나간다고 집과 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 그때 SNS에 대학 동기가 같이 살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당장 연락했고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같이 살기로 합의봤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부모님한테 서울에 취업했다고 거짓말한 뒤 그의 자취방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룸메이트인 형철은 여자친구와 투룸에서 동거하고 있었는데 그녀와 헤어지는 바람에 여자친구 대신 월세를 같이 내줄 사람이 필요했다. 다행히 형철이 보증금은 자신이 이미 냈으니 따로 안 받겠다고 해서 나는 월세만 나눠내기로 했다. 나와 형철은 성격이 잘 맞는 타입도 아니었고 대학 때 그닥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서로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우리는 적당히 눈을 감고 룸메이트 생활을 시작했다.
형철은 모르겠으나 나는 그래도 꽤 만족하는 동거 생활이었다. 형철은 평일 대부분 야근을 해서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는 모자란 잠을 몰아 자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거의 혼자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형철이 자기가 일하고 있는 채용대행사의 일손으로 나를 써줬기 때문에 월세랑 생활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형철이 회사는 늘 일손이 부족했다. 기업에서 의뢰받은 채용박람회 부스 설치, 면접장 세팅 및 철거, 대학생 대상 기업행사 사전 세팅·철거 같이 하루 종일 짐을 나르고 움직여야 되는 단기 알바가 많이 필요했다. 나는 비록 재생산을 할 수 없게 된 어설픈 노인이지만 몸뚱이는 젊고 튼튼했기 때문에 이런 일에 부담이 없었다.
사실 형철의 제안을 받기 전에는 보통의 노인들이 많이 하는 공공근로나 경비 업무를 할까 했지만 근로 신청할 때 내는 주민등록서류에서 나이가 들통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나는 파업 중인만큼 개량한복을 입고 일하고 싶었는데 그때 마침 형철이 높은 시급의 세팅 단기 알바로 짧게 짧게 자주 일할 생각 없냐고 물어준 덕분에 지팡이를 들고 출근해도 무리 없이 일할 수 있었다.
형철은 행사 운영 보조도 해달라고 내게 부탁했지만 나는 그러면 개량한복 말고 다른 걸 입어야 하니 안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내 말을 들은 형철은 괴상함과 불쾌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날 봤지만 난 그의 얼굴을 보고 허허거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었다. 그리고 나는 웃으면서 사람 좋은 할아버지 같은 웃음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이번 주 근무 장소는 성수였다. 나는 형철의 회사 사람들과 현장을 따라다니며 면접장을 세팅했다. 기업 내 회의실이 모여있는 층에 현수막을 붙이고 테이블을 깔고 멀티탭과 면접관용 노트북을 설치했다. 정신없이 일하는 중에도 나와 같이 알바를 하는 사람들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들은 다 츄리닝 차림이었지만 나는 군데군데 김치 국물이 묻은 누런 개량한복이었고 게다가 6.25 참전용사 모자를 쓰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모른척하며 벽에 살짝 기대놓은 지팡이 옆에 앉아 면접자들 물품보관에 필요한 DIY 철제 행거를 묵묵히 조립했다.
나는 가끔 일이 없는 날 햇살이 좋으면 동네 공원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그러면 공원에 앉아있던 진짜 노인들이 멀리서 나를 흘깃흘깃 보며 수군거리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와 내게 물었다.
“젊은 사람 맞지요?”
그럼 나는 “네 맞아요. 나이는 아직 젊어요.”라고 대답하며 사람 좋은 할아버지 웃음을 지었다. 그럼 노인들은 대부분 하이고 참 별나다면서 왜 젊은 사람이 노인네처럼 입고 다니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그냥 이게 편해서 그렇다고 대답한 뒤 다시 허허 웃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상하다는 허허 웃으며 그냥 돌아가거나 내게 교회 전단지 같은 걸 건넸다. 그럼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되돌아가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쓴 6.25 참전용사 모자에 관심을 가지고 시퍼런 눈빛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노인들도 있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런 모자를 써?”
무심한 듯 하지만 약간 상기된 목소리. 누가 이렇게 물어오면 나는 그 사람의 눈을 보고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이걸 쓰면 할아버지가 된 것 같거든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럼 그 노인은 허허 웃으며 할아버지가 참전용사셨냐고 되물었다. 그럼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들려주셨던 6.25 전쟁 무용담을 말하며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이야기했다. 그 외에 기억나는 건 멀리서 긴가민가한 눈빛으로 걸어온 뒤 “스님이여?”하고 물었던 어떤 할아버지 정도였다. 그렇게 이사 온 몇 달 동안 여러 명의 노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로는 공원에 지팡이 차림으로 앉아있어도 내게 이상한 눈빛으로 말을 거는 노인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공원에서 편안히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로 나는 따스한 햇살 아래서 조용히 음악을 듣다가 전에 말을 나눴던 노인을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그럼 노인들은 씩 웃으며 느린 동작으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이런 평화롭고 한적한 일상이 좋았다. 가끔 노인들은 교회에서 받았다는 떡을 내게 건네기도 했고 자기 자식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젊은 사람이 일은 안 하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나는 친구가 일하는 회사에서 일을 도우며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웃음소리와 함께 역시 예술하는 사람은 별난가 보네 하는 말이 들려왔다. 글은 개뿔. 나는 노인의 웃음 섞인 말에 같이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형철이 꽂아준 일 외에 다른 생산적인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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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포기했지만 욕구까지는 제어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가끔 형철이 없는 집에서 자위를 한 뒤 휴지에 묻은 정액을 보며 잠시 정자에 대해 생각했다. 여긴 정자가 없겠지. 미량은 있을라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휴지를 변기로 내린 뒤 샤워를 했다. 거울로 본 내 알몸은 기분 나쁠만큼 젊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3~4일은 출근해서 짐 나르고 움직이는 일을 하니 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에 살이 붙지 않았다. 게다가 일 때문에 식사량이 늘어 고민이었다. 노인은 입맛도 짧고 청년보다 적게 먹어야 할텐데 맨날 라면을 두 봉지씩 먹고 있으니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아, 나는 청년파업마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구나.
씻고 나오니 식탁 위에 어젯밤에 형철이 먹은 라면 냄비와 뚜껑 열린 김치 락앤락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짜증난 마음으로 정리했다. 형철과 같이 산다는 건 꽤나 불편한 지점이 많았다. 이처럼 어제 먹은 것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던가 한밤 중에 우당탕탕 들어와 잔뜩 취한 친구와 술을 마신다거나 하는 것들.
형철도 느끼겠지만 우리는 정말 생활습관이 안맞았다. 얘를 들면 식사 후의 뒷정리, 집안 청소, 수면 시간 같은 것들. 형철에게 몇번 말해봤지만 그는 들은체 만체 했고 가끔은 오히려 형철이 내게 생활습관을 바꿀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우리는 집 때문에 같이 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청년을 파업하여 자발적으로 노인이 됐지만 주거 문제는 족쇄처럼 나를 여전히 청년에 머물게 했다. 전세도 생각해봤지만 전세는 사기 당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그럴 돈도 없었다. 누군가는 대출을 받으라 말하겠지만 이렇게 불안정한 삶에서 빚까지 내면 삶의 불안도가 더 높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청년을 포기한 것처럼 집도 포기하면 편했다. 그런 마음가짐 때문에 불편한 형철과도 같이 살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집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이미 변기 속에 던져 버렸기에 체념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도 크게 괴롭지 않았다. 난 그저 현실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불편한 누군가와 한 집에서 사는 삶을. 여전히 내 곁을 맴도는 외로움과 불안을. 피부에 들러붙은 무기력을. 그리고 그 아래에는 체념과 포기가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깊은 땅 속에 묻어놓은 마음, 꿈, 소망들.
아, 내가 무슨 소리를. 꿈은 잘 때만 꾸고 소망은 백일몽처럼 여기면 될 텐데.
늦은 오후. 낮잠을 자던 나는 핸드폰 전화 진동에 잠을 깼다. 일이 없는 날인데 누구지? 아, 엄마구나.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내게 보고 싶으니 내려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본가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내 청년파업도 정관수술도 모두 부모님께 비밀로 하고 싶었다. 내가 내 인생을 망쳐버린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나는 바쁘다고 말한 뒤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엄마는 잠깐의 통화 동안 계속 나를 걱정했다. 타지에서 잘 살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걱정된다며.
어른들은 청년을 걱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걱정뿐이다. 아, 물론 부모는 젊은 자녀를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이웃의 아줌마 아저씨는 걱정만 할 뿐 움직이진 않는다. 청년을 걱정어린 시선으로 관망하는 수천만의 아줌마 아저씨들. 이런 무기력한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은 분노도 희망도 제거하고 그저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응 엄마 다음에 꼭 내려갈게. 응 나 지금 바빠서 이만 끊을게 미안해 엄마.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나는 계속 통화를 이어가려던 엄마에게서 힘들게 전화를 끊고 방안에 들어온 냄비만한 햇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핸드폰에 진동이 울려 확인해 보니 SNS 알림이 와있었다. 내게 추천하는 글이라는 알림을 확인해 보니 누군가가 유머로 올린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조적인 만화였다. 아 웃프구나. 나는 낄낄거리며 만화를 보다가 전에 봤던 어떤 밈 텍스트를 문득 떠올렸다.
응 떨어트려봐ㅋㅋ 자살하면 그만이야ㅋㅋㅋㅋㅋㅋ
청년파업을 마음먹기 전 정말 붙을 것 같았던 D기관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결과 발표 전 진행했던 최종면접에서 분위기도, 내게 질문하는 면접관들 표정도 모두 좋았었다. 하지만 결과는 최종 탈락. 면접 당시 나랑 같이 면접 봤던 옆사람이 조금 신경 쓰였다. 면접준비가 부족해 보였지만 어딘가 기분 나쁘게 기세등등한 태도였다. 면접 직후 나는 뭔가 불안한 느낌에 대기실에서 옆사람의 이름을 핸드폰에 적어놨었다. 그리고 몇 주 뒤 또 한 번의 탈락으로 손에 맥주를 들고 약국 옆을 지나가는데 통창 너머 TV에서 유명 정치인이 자녀 채용비리 사건으로 역풍을 맞았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채용비리와 연관된 곳이 내가 최종면접까지 갔던 D기관이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메모장을 켜서 그때 적은 이름을 봤다. 어? 채용비리 사건 정치인과 성이 같았다. 우연이었을까? 묘하게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러자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할까? 제기를 해서 받아들여지면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데 증거는? 채용비리로 들어간 자녀가 내 옆사람이 아니라면? 단순한 우연이라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허황된 문제제기를 한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 그럼 앞으로 취업시장에서 괜찮을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분노도 일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건 체념이었다. 정말 내 옆사람이 채용비리 사건 당사자라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 정도 힘 있는 사람이면 나 같은 사람의 입을 막는 건 어렵지도 않을 텐데. 힘들고 괴로운 마음에 엄마한테 의심된다고 말할까 싶기도 했다. 엄마도 내 취업을 꿈같이 바랐으니까.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말을 하려고 엄마에게 은근슬쩍 역풍 맞은 유명 정치인 이야기를 꺼내니 엄마는 그 정치인을 안타까워했다. 자기는 저렇게라도 아들 취업 시키고 싶은데 자신은 힘이 없어 그러지 못해 슬프다고도 했다. 엄마는 그 정치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자기랑 비슷한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처럼.
이후로 엄마는 그 정치인 뉴스만 나오면 불쌍하다고 했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밀려난 것일 수도 있는데. 취업을 못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 성공을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효도도 못할 수도 있는데. 고생만 한 우리 엄마 내가 호강시켜드려야 하는데. 내가 그러지 못할까 봐 너무 무섭고 화가 나는데. 내 친구들도 다 분노하는데.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 엄마는 엄마라는 삶의 1인칭 주인공이기 때문에 자기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었다. 엄마는 최정희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 최정희의 아들인 김상현의 입장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는 자기가 가진 부모라는 정체성 때문에 부정취업에 의해 피해를 본 ‘청년’이 아니라, 부정취업을 시킬 수 있는 ‘부모’ 정치인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몰입하는 것이었다.
근데 나는 여태까지 최정희 여사에게 엄마 말만 들으라고,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그래서 나는 엄마만 믿었는데. 그런데 우리 엄마가 내 앞길을 막은 것 같은 사람을 응원하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아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우리 엄마가 청년을 걱정만 하는 이웃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이럴 수가. 하지만 엄마를 탓할 수는 없었다. 어린 나이에 날 낳고 혼수 적게 해 왔다고 친할머니한테 늘 구박받던 우리 엄마를. 그리고 임신과 동시에 시작된 경력단절로 원치 않게 지금까지 주부로만 살아온 우리 엄마를. 난 엄마가 안쓰러웠다. 우리 엄마 참 재주 많은 사람인데.
난 엄마가 행복하길 바랐다. 그 정치인을 응원하는 게 엄마의 마음이라면 나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엄마를 바꾸거나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도 행복하길 바랐다. 엄마가 이웃 아줌마처럼 느껴지지만 그냥 그것도 현실인 것이었다. 불확실한 것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에서는 빨리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 일단 받아들이고 포기하자.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게끔 하자. 그리고 나는 이 체념과 포기를 받아들인 채로 나만의 삶을 살자. 왜냐하면 나는 이 젊음이 너무도 무거워 던져버리고 싶으니까.
아, 그리고 아빠. 최근 아빠하고는 대화가 어려웠다. 요즘 아빠는 어떤 정치 유튜브에 푹 빠져있는데 지상파 뉴스에서 나온 얘기하고는 좀 다른 얘기를 했다. 아빠는 유튜브에서 봤다며 확인이 안 된 것 같은 자극적인 내용을 내게 말했다. 어느새 아빠 입에서는 나를 걱정하는 이야기보다 나쁜 놈들 때문에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더 많이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유튜브에서 본 얘기를 엄마한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아빠가 그 얘기를 엄마한테 하면 대판 싸움이 날게 뻔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정치 성향이 같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아빠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나중에 아빠 유튜브 알고리즘을 강아지와 고양이로 싹 바꿔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쿵. 이렇게 축 처진 마음으로 내 방에 들어오니 무기력한 기분이 요로결석처럼 온몸에 끼어 젊음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텨보려 했지만 이미 오랫동안 쌓여왔던 체념과 포기는 커다란 방아쇠가 되어 내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젊음, 청년, 미래.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 꿈이 아니라 생존을 고민하는 내게 젊음이란 건 거추장스러운 것인데. 던져버리고 싶은 것인데. 어울리지 않는 것인데. 나는 나의 푸릇한 젊음이 괴로웠다. 내 마음은 침전되고 무기력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회색인데 내 나이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생생한 젊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너무 늙어버려 있었다. 나는 이 이질감이 싫었다. 그리고 이 이질감이 전혀 극복될 것 같지 않았다. 이 괴로운 짐을 신체적으로 노인이 될 때까지 이고 살아야 한다니 그건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어떻게 될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미리 젊음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
나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명언을 비틀어 20대에 75살이 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나의 젊음이 죽었다면 젊음에게 지어진 짐을 던져버리고 편안히 노인으로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재생산, 에너지, 역동성, 희망 이런 것들을 정관수술과 함께 전부 묶어버리고 차라리 노인으로서의 삶을 길게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노인이 되면 지금보다 더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몸에 있는 에너지를 일부러 죽이며 살아야 하고 젊음이 가진 욕구도 제어하고 살아야 할 텐데. 하지만 생각을 더 해보니 내게 무기력은 그렇게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무기력은 이미 일상을 침범한 공기 같은 것. 그래, 더 무기력하면 뭐 어떻다고. 이미 희망은 거품일 뿐이고 시대는 어렵고 미래는 어두우니까. 이게 분명한 현실. 그래 다 놓아버리자. 아무것도 하지 말자. 이 현실을 받아들이자.
빵!
그렇게 방아쇠가 당겨진 다음날, 나는 동네의 한 비뇨기과에서 정관수술을 받고 나왔다. 하하, 내가 중성화라니. 덕분에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친구네 고양이 후추가 생각났다. 이상하게 정관수술을 하니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뭐든 포기하고 던져버리면 마음이 편하구나. 나는 이날 젊음이 가진 짐을 모두 던져버린 듯한 느낌에 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근데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오랜만에 야근 없이 저녁 시간에 집에 들어온 형철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집 거실 바닥에 누워 스피커로 노래를 듣고 있던 나는 고개를 살짝 들고 형철의 말에 무심한 말투로 답했다.
“몰라.”
내 말을 들은 형철은 불쾌한 얼굴을 하고 다시 내게 말을 던졌다.
“그 이상한 할아버지 컨셉 좀 그만해. 너 취업하러 서울 올라온 거 아니었어?”
“취업은 생각 없어. 노인이 무슨.”
“미친 새끼.”
내 말에 형철은 이렇게 답한 뒤 문을 꽝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몇 분 후 형철은 문을 살짝 열고 아까보다 더 불쾌해진 표정으로 내게 말을 던졌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맨날 야근하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데 너는 도대체 뭐야?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 없어?”
“어쩌지 내 꿈이 한량이라.”
나는 형철의 말에 이렇게 답하며 사람 좋은 할아버지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형철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다시 문을 꽝 닫고 들어갔다.
형철은 어른들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자기 회사의 상사들 이야기를 많이 했다. 형철은 나한테 그들이 해준 조언이나 이야기들을 읊었다. 형철은 그 어른들 말대로만 살면 인생이 풀릴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만 하면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진을 하고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그런 형철에게 내 모습은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겠지. 마지못해하는 단기 알바 외에는 생산적인 것들을 전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거실에 누워 노래를 듣거나 누런 개량한복 차림으로 공원을 어슬렁거리는 괴상한 젊은이의 모습.
형철과 달리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어른들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말에는 모순이 있었다. 나는 세상이 어른들 말대로만 하면 잘된다고 해서 그 말을 따라왔지만 막상 자라 보니 어른들의 말은 나를 책임져주지도 지켜주지도 않았다. 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은 내가 여태까지 따라왔던 말을 벗어나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청년답다고 말하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하라 해서 그렇게 살아왔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따라왔던 길에서 벗어나라니. 이 문턱에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나를 밀어붙이는 또 다른 말을 따라갈 건지 아니면 다 집어던져 버릴 것인지.
그 결과 형철은 새로운 말을 따랐고 나는 집어던졌다. 하지만 우리 둘 다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둘 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저버렸다. 결혼은 어찌어찌할 수 있겠지만 자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가 그 평균의 삶에 도달할 수 있을까. 취업, 결혼, 출산, 자가라는 4천왕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 형철은 나와 달리 세상이 청년에게 부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고 있었다. 반복되는 야근, 여전한 월급, 높은 물가. 하지만 그럼에도 역동적이고 열정적이고 희망적인 젊음은 세상이 규정한 ‘청년’이라는 연극을 멈추면 안 된다. 이 연극을 멈추면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형철은 세상이 건넨 연료로 청년이라는 기계를 계속 돌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이 정한 청년이 싫은 나는 청년을 파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연극 무대 아래의 청년은 진짜 청년이, 진짜 젊음이 아닐 테니까.
개나리. 4월. 교복.
나는 개나리가 피면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한 살씩 먹을수록 더욱 미안해졌다. 시끄러운 매미소리. 폐를 아리게 하는 찬 공기. 이 세상에 속해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면 미안함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그럴 때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 있는 동갑들에게 목숨을 빚진 기분이라 그랬다. 그래서 가짜 청년이었던 나는 늘 4월이 괴로웠다. 친구들이 손에 넣지 못한 청년을 누리고 있음에도 늘 무기력해서. 희망차고 역동적인 젊음이 아니라서. 미래를 꿈꾸고 있지 못해서. 어리석게도 머릿속에 죽음을 떠올려서.
오래전 TV로 가라앉는 배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배에서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잘 들었지만 그 말이 아이들을 구해주지는 못했구나. 이 사실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충격은 내 안의 있던 커다란 세계관을 붕괴시켰고 그 여파로 인해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차올랐다.
어른들의 말은 어쩌면 틀린 것을 넘어 나를 죽게 만들지도 몰라.
그러니 이제는 어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선생님도 엄마 아빠도 날 도와줄 수 없을지 몰라.
그럼 이제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세상에 믿을만한 것이 있긴 한 걸까?
아무도 나를 책임지고 도와줄 수 없어.
불안 그리고 무기력. 그렇게 고등학생이었던 아이는 자라 대학생이 되고 취준생도 됐지만 그때 느꼈던 불안과 무기력은 강해졌으면 더 강해졌지 사라지지 않았다. 무기력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청년이 가진 열기를 차갑게 식히고 타오르는 빛을 침잠시키게 만드니까. 무기력으로 인한 침잠은 각종 청년 이슈를 마주칠 때마다 더 강해지고 깊어졌다. 아무도, 그리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어 불안하고 무기력한 마음. 그렇게 이 침잠은 젊은이의 마음을 늙고 바스러지게 만들었다.
몇 년 전 전시장에서 알바를 할 때 동료 스태프와 퇴근 후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마침 그때가 선거 기간이라 술집 TV에서는 선거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느 노포의 저녁. 나는 잠시 낡은 벽 앞에 있는 TV를 쳐다보다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지원님은 이번에 누구 뽑을 거예요?”
“글쎄요. 난 아무도 안 믿어서.”
“뭐야. 재미없어.”
재미없다는 말에 그는 하하하 소리를 내며 크게 웃더니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내게 말했다.
“잘 봐요 상현님.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는 순진한 게 못된 것보다 나쁜 거라고. 아무리 믿을 게 없어도 그렇지 정치인을 믿는다? 저는 그게 미친 짓이라고 생각해요.”
“어휴 무슨 말 꺼내기가 무섭네. 혹시 정치인한테 데인 적 있어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살다 보니. 친구들도 못 믿는데 무슨 정치인을. 하다못해 부모 자식 간도 못 믿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 말 믿어서 그 사람 뽑아주고. 너무 이상해요.”
“저도 정치인을 믿지는 않아요.”
“그럼 됐어요. 만약 믿을 거면 그럴 시간에 가족이랑 친구들을 믿어요. 힘 가진 자에게 신뢰를 건네면 정말 안 좋아.”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마셨다. 그러고는 크으 소리와 함께 입에 묻은 소주를 손으로 닦으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저는 믿으세요?”
“흠 NCND 하죠.”
“참나. 유일한 전시장 친구인데 No Confirm No Deny?”
“Neither Confirm Nor Deny. 확인 안 해줄 거예요. 아무튼 아무도 믿지 말라고요. 나도 포함이고.”
“네네.”
잠깐의 정적. 잠시 뒤 나는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근데 뭐가 지원님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침묵. 그는 오랫동안 대답을 안 하다가 소주를 한 잔 마신 뒤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특히 2014년 4월 16일. 그때 뉴스를 보고 어른들 말을 순진하게 믿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말로 날 쉽게 죽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냥 그때부터예요. 순진함은 죄악이다. 아무도 믿지 마. 특히 힘 가진 사람이면 더욱.”
“고2 때 했던 생각 치고는 너무 시니컬한데.”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술을 들이켰다. 나는 그런 그를 따라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다 식은 맥주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안 믿어요. 그냥 사람이랑 대화하려고 그러는 거지. 나도 알아. 어른들 말을 순진하게 믿었다가는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는 것을.”
***
채용대행사는 주말에 일하기도 한다. 그렇게 마주친 주말 오후의 성수. 거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빼곡히 깔려있었다. 오늘 생각보다 일찍 일이 끝나 기분 좋게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는데 에너지를 빨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에 잠시 길가에 멈춰 서니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매끈하게 빼어 입은 진짜 청년들. 하지만 가짜 청년인 나는 그들이 내 기운을 가져가는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이 규정하는 청년에 맞지 않는 사람. 나는 생기와 활기로 가득한 주말 성수의 한복판에서 진짜 청년들을 보며 잠시 까마득한 무기력을 느꼈다. 순간 온몸에 서늘한 기분이 들었지만 눈을 질끈 감은 채 양손으로 나무 지팡이를 꽉 잡고 정관수술한 것을 떠올리니 아래로 솟구치던 마음이 이내 멈추고 잔잔해졌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고 성수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우연히 모교의 교수를 마주쳤다. 나는 교수를 보고 놀라 기를 쓰고 모른 척했지만 이 북새통에서 교수는 기어코 나를 알아봤다.
“혹시 상현군 아닌가? 차림새가 꽤나 이상하군.”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랜만이네요.”
아, 이 교수님 성수 쪽에 산다고 하셨지. 운이 없게도 하필 오늘. 일찍 퇴근하게 됐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구나. 나는 교수와 대충 몇 마디 나누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하필 교수와 가는 방향이 겹쳐 승강장까지 동행하게 됐다. 성수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오늘도 고장 나있었다. 승강장에 도착한 전철 문이 열리자 교수가 열차 안으로 들어가며 내게 물었다.
“자네는 어디 가나?”
“저는 이제 집으로 갑니다. 교수님은 어디 가세요?”
“흠 그렇구먼. 나는 대학원생들 만나러 가는 길이야. 아, 그리고 자네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어?”
“그냥 잠시 알바 중입니다.”
“그렇구먼. 옷이 특이하길래 물어봤네. 그리고 자네가 민지랑 동기이던가?”
“네 맞습니다. 학부 동기예요.
교수는 민지 얘기를 하며 오늘 참석할 회식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키링 얘기를 꺼냈다.
“민지는 왜 이렇게 자꾸 키링을 사는지 모르겠어. 살 거면 괜찮은 것들을 사지 왜 자꾸 한심한 것들만 사는지. 랩실 책상에 키링이 한가득이더군.”
나는 교수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지는 왜 자꾸 키링을 살까? 나는 대학시절 마스킹테이프를 계속 사던 때가 있었다. 마스킹테이프가 그닥 필요하진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구매하고 있었다. 나도 비싸고 좋은 물건을 사고 싶었다. 이왕이면 차나 집 같은 것들.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는걸. 그래도 아직 젊으니 절망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살 수 없더라도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괜찮을 거야.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가면 갈수록 그 가능성이 가파르게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어려운 현실. 빠듯한 생활비. 미래에 대한 불안. 이런 상황에서 내가 기분 좋게 소비할 수 있는 건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는 내 취향의 마스킹테이프뿐이었다. 그리고 그때도 알고 있었다. 마스킹테이프를 사는 것이 단순 위안에 그친다는 것을. 하지만 막상 다른 대안도 없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늘 고장 나는 성수역 에스컬레이터처럼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멈춰버린 것 같은 현실에 분노가 솟았다. 하지만 그렇게 타오르다가도 내가 화를 내서 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면 몸이 차갑게 식으면서 무기력해졌다. 어쩌면 민지도 그래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한심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계속 키링만 샀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네 표정 어딘가 화가 난 것 같군.”
나는 교수의 말에 깜짝 놀라 굳은 표정을 펴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민망해서 6.25 모자를 고쳐 썼다.
“근데 자네 옷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혹시 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항인가?”
나는 교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반항처럼 보여서 말이야.”
“반항이 아닙니다.”
“그럼 뭔가? 단순한 일탈인가?”
“일탈도 아닙니다.”
“그럼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 그러나?”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럼 뭔가?”
난 교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수는 시답잖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도저도 아니군. 아무것도 아니면 뭔가? 내 말에 대답하기가 싫나? 그것도 아니면 내 말에 대한 기계적 중립인가?”
“하하하 기계적 중립이요? 글쎄요 일단 저는 기계적 노인이라서요.”
“하! 젊은 사람이 노인이라니 웃긴 소리군.”
교수는 내 말을 듣고 혀를 쯧쯧 차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에서 내렸다. 곧이어 전철 문이 닫히자 나는 교수가 내린 전철에서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어른 대접이라니 끔찍하군.”
내가 청년을 파업한 건 반항이라던가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청년을 파업한 건 뜨거움과 가능성으로 포장된 청년이란 단어가 내게 너무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너무 미지근하게 식어버렸고 내게 미래는 가능성으로 차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벅찬 것이었다. 희망보다는 짐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과거보다 미래가 더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청년을 포기하고 노인 행세를 했다. 그리고 난 이 삶에 만족했다. 누런 개량한복에 6.25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면 어떤 사람들도 내게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끼이이이익. 달리던 전철이 다시 역에 멈추자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여보세요? 응 엄마.”
우우우우웅. 나는 다시 출발하는 전철에서 손잡이 대신 지팡이를 꽉 잡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정관수술하면 어떨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 스피커 너머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 장난이야 장난. 전철인데 비뇨기과 광고가 보여서 응응 농담이야.”
농담이란 말에 진정된 엄마는 내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며 걱정을 했다.
“힘들면 내려오라고? 아휴 어떻게 그래. 그렇게 되면 포기한 건데.”
나는 내려오라는 엄마의 말에 목이 메었다. 하지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침을 꼴딱 삼키고 최대한 기운 있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아니야 엄마. 젊은 사람이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야지 버텨야지. 응 나 젊으니까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 응, 나 아무렇지도 않아 다 괜찮아.”
글: 김지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