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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Nov 19. 2016

유쾌한 나였어

태어나기 전 내게 주어진 나의 모습 말이야

조금은 극단적이다.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나 왜 이렇게 머리가 좋지 생각하다가도, 또 그와 정반대로 나 정말 멍청하잖아 이것도 못해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때로는 수다스럽고 명랑하다가도 또 때로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지나치게 열정적이다가도 이내 그 불꽃이 사그라들 때도 있고.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는 말에 곁에 있는 남편조차도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남들 눈에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기도 한다. 이 점이 사실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안에 있던 자존감이란 것이 훨훨 날아가버린 탓일지도...



임상심리학 시간에 TCI(기질성격검사) 검사를 하였다. 타고난 기질과 또 만들어진 성격에 대해 알아보는 검사였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하였으나 어쨌든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검사를 받게 하셨고 결과지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셨다.


기질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이고, 성격은 자라온 환경과 부모의 양육태도에 의해,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있는 후천적인 특성이다. 이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것일 게다.


내게 주어진 어떤 기질이라는 것들이 다소 우울하고, 음침하며, 마치 땅 위를 기는 것과 같은 그런 차원의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 축축한 땅 속을 기어나와 꿈틀꿈틀 온 몸으로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그 자리에서 그만 화석으로 굳어지거나, 누군가에게 밟혀 죽고야마는 지렁이 신세인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곤 하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나는 내가 예상했던 기질과는 전혀 다른 그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기질의 결과는 한마디로 '유쾌한'으로 나왔다. 여유롭고, 낙천적이고, 근심이 없고, 자신감 있고, 낯선 환경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내게 주어진, 내가 타고난 기질이었다.


그런데, 살면서 형성된 성격은 권위주의적이고, 경쟁심이 많고, 목적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아랫 사람을 몰아부치기도 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결과지에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소 불안도가 높고 예민하기도 하며, 낯선 환경이나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내가 아는 나의 성격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나이다.


유전적으로 가진 나의 기질과 만들어진 성격이 너무나 상반된 결과가 나와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심지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다른 부모 밑에서 컸더라면, 좋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이런 가정들을 참 많이도 하고 살았었는데... 그랬더라면 타고난 기질대로 낙천적이고, 여유롭고, 걱정없고, 낯선환경도 두려워하지 않는 좀 더 편안한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래, 나는 웃음이 많고, 유머감각도 있고, 리더십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낯을 가리지 않고, 밝고 명랑하기까지 하다. 이게 내가 가진 본래의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나를 지지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때때로 위축되고, 우울하기도 했으며, 자신감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곱 살 때 부모님은 내 앞에서 같이 죽자고 다리 위에서 떨어지려고 한 적이 있었다. 아빠는 화가 나면 엄마를 주먹으로 때리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나를 놔두고 도망가 버릴까 두려워졌다. 그리고 아빠의 바람끼 때문에 부모님은 이혼을 한다고도 하였다.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내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 상황이 몹시도 불안했지만 그 불안한 마음을 쉽게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너무 무서우면 소리도 낼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소리를 내는 순간 불안한 상황이 현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몹시도 불안도가 높은 사람으로 자랐다. 그리고 성공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에 휩싸인 사람이 되었다. 그 모든 불안한 상황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과 방법이 사회적인 성공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 되었고,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나 자신을 몰아부치기도 하였다.


며칠 전, 자다가 깼는데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러다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머리도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은데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불안 속에 잠식되어 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거실에 쓰러진 채 남편이 몇 번을 쓰다듬어 준 다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날의 죽을 것같은 공포감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나는 잘 때도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야할 정도로 불안도가 높다. 텔레비전을 끄고 깜깜한 공간에서 잠을 잔다는 건 불안과 공포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히기까지 하니까. 때로는 강박이 단단한 모습을 한 채, 말랑한 나를 덮어버리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낙천적인 힘과 여유로움, 두려움이 없는 기질들은 이제 작아질대로 작아져서 나조차도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신감이 넘쳐 다른 이들에게 거침없어 보일 수도 있는 것이 나의 본래의 모습이었건만, 나는 내 안에서 자신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성격은 얼마든지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단다. 작은 안도의 숨 하나가 내 심장 안에 여유의 공간 한 뼘 정도는 들여다 놓아준 것만 같았다. 내게 남겨진, 타고난 나의 유쾌함들을 돌려받고 싶어졌다.


잃어버린 나의 모습들... 본래의 모습들... 찾을 수 있을까?

되찾고 싶다.


그리고 누구를 닮아 저럴까 싶었는데, 나를 닮아 마음씨 착하고 낙천적이고 개구진 아들의 모습 역시도 지켜주고 싶다.



휴지조각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색깔 하나를 찾기 위해
줄곧 서성이다 하나를 집어 들고선
내 것인 척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 짝에 쓸모없다 한껏 욕한 후 버려야 하는 것인지
망설이다 
슬쩍 주머니 속에 쿡 찔러 넣는다.

어느날 코를 세게 풀거나 남몰래 눈물 따위나 닦다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겠지.
발밑에 고꾸러진 색깔 하나가 꼭 나같지 않은가.

땅바닥에 구르는 낙엽에 들러붙어 
그와 함께 외로워지리라.

하늘에 걸린 화려한 색깔들을 본다.
숨을 한껏 들이마신다.

혹시나 그 색깔이 나의 것이 될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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