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Nov 23. 2016

본래의 모습으로 사랑받기

내가 아닌 채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나 아닌 것으로 사랑받기 보다는
온전히 나로서 미움 받기를 원한다.

- 너바나 커트 코베인  -


며칠 전, 싫다고 말할 우리의 고유한 권리에 대한 글을 썼었다. 사람들이 거절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자기주장기술이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이웃 아줌마로부터, 여러 사람으로부터 잘려나갔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거절했을 때 상대로부터 미움을 받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한참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 아마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계속해서 올랐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미움 받을 용기가 부족한 자기 자신을 고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친한 동생이 한참동안이나 팀장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팀장은 뒷담화는 기본이고, 동생을 왕따 시키기도 했고, 일을 많이 시키기도 했으며, 심지어 볼펜으로 동생의 머리를 탁탁 때리기까지 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누군가로부터 머리를 맞았을 때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아무리 상사라도 볼펜으로 머리를 탁탁거릴 수 있는 권리같은 건 없는 거다. 동생은 팀장 때문에 너무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팀장은 장조림이 먹고 싶다며 동생에게 장조림을 해서 갖다 달라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절대 해다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걸 해다 준다고 해서 동생을 괴롭히던 팀장이 그 태도를 바꾸어 동생을 예뻐하기 시작할 것도 아니고 그것을 고마워할 것도 아니었다. 아마 그것을 시작으로 이 반찬, 저 반찬 요구만 많아졌을 것이다. 나에게는 해주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동생은 거절도 못하고 약한 마음에 먹고 싶다는 반찬을 팀장에게 해다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빌려주는 걸 싫어한다. 내 집에 와서 내 책을 만지는 것도 싫어한다. 돈은 빌려줄 지언정 책은 빌려주고 싶지가 않다. 서점 가면 비싸지 않은 값으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책을 빌리고 있는 행위가 궁색한 행동 중 가장 궁색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책을 하나 내기까지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는 고통과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염치 없는 짓이다.


어느 날 교회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왔는데, 누군가 아이 이유식 책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급기야 여태까지 이유식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었는데, 자꾸 빌리러 가기가 뭐하다면서 내가 가진 이유식 책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빌려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못 먹고 큰 것에 대한 한을 결코 아이한테는 물려주지 않겠다며 매일매일 매 끼니를 정성을 들여서 이유식을 만들어 이유식 책에는 나의 손떼가 잔뜩 묻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먼 훗날 아이가 혹시라도 엄마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냐 따지기라고 한다면 그 책을 조용히 증거자료로 내 밀 요량이었다. 한마디로, 아기였던 아이의 모습과 그 아기를 먹이기 위해 매 끼니 새로운 음식을 하느라 분주했던 나의 모습 역시 그 책 속에 고스란히 하나의 역사처럼 남아 있었기에 내겐 정말 소중한 책이었다. 그래서 그 부탁이 여간 짜증나지 않았다. 어떻게 다른 책도 아니고 제 자식 먹이는데 필요한 이유식 책 하나 사는 게 그렇게 아까울까, 1만원도 하지 않는 책 살 돈이 없어서도 아닐텐데... 거절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순간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 하나 빌려주지 않는 매정한 년이라고 속으로 욕할까봐 이유식 책 두 권을 빌려주고선 내내 속앓이만 했다. 내 책에 남의 손 떼를 묻히는 것도 싫은 일이지만, 한번 남의 손에 들어간 책이 다시 내 손에 돌아오지도 않았다. 일주일만 보고 준다더니, 일주일이 지나서도 돌려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내가 그 순간 책을 빌려주었다고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나를 인정 많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관심 밖의 일이었을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저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었다. 뭐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주기 싫은 걸 억지로 주고 있었던 것일까. 그 한번의 행위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왜 내 것을 빌려주면서도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을까, 내 것을 빌려주기 싫다는데 누가 거기다 뭐라고 할 권리가 있었단 말인가.



나를 꾸민 적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쿨하고 싶지 않았으나 쿨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였고, 착한 사람처럼 행동해봐야 아무도 나를 착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좋은 사람인 척 굴었다. 싸우고 나서 마음을 풀고 싶지 않고 그저 옹졸한 채로 있고 싶었으나 괜히 마음 넓은 사람처럼 허허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기도 했고,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혹은 불만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때면 우울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앞에 비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는 어떤 시선 안에 갇힌 채 죄수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는 그것이 어른이라고 말하기도 할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멋대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내 멋대로 구는 것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사는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까.


그것이 어른이라면 나는 과감히 어른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리고 싶다. 나는 아주 자주 까칠하게 살고 싶다.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살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 특이하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와중에 조직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실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떤 날은 참고 있었더니 한참 어린 것들이 나를 호구로 봤던 적이 있었고, 몇 번 더 참았더니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인 줄 알던 인간도 있었다. 뒷담화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참았더니, 더 많은 뒷담화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무례한 언사에는 기분 나쁜 것을 표현해야 했다. 누군가 뒷담화를 하면 가서 화도 냈어야 했다. 참으로 이상한 건, 우리나라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흔해빠진 못난이들이 많더란 거다. 사실,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참는다고 해서 누군가의 적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돌멩이가 묵직하게 제 자리에 있는다고 그를 발로 뻥뻥 걷어차는 무좀 딸린 발바닥을 만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처럼. 



최근에, 몇 명의 사람들에게 어떠어떠한 선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는 정이니까'하고 나 자신을 설득하였으나,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그 선물 하나로 친해지고 싶고 잘 보이고 싶었다. 정말 궁색하기 짝이 없는 자기기만과 눈속임이다. 사랑받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만큼 눈물겨운 일이 또 있을까. 내가 무엇을 해주어서 누군가 나를 좋아해줄 것이라는 환상과 기대에서는 깨어나야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에 집중한다거나, 누군가의 시선 하나에 흔들리거나 마음에 담아두는 일 따위에서 벗어나고 싶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신경쓰느라, 정작 내 마음은 살뜰히 챙겨주지도 못했다. 그냥 내 멋에 살며, 내가 입고 싶은대로 입고, 내 마음 하나 편하게 살아도 이젠 누가 욕할 만큼의 어린 나이는 아니지 않나. 아니 어리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많은 나이까지 되지 않았나. 이젠 누구 앞에서 당당하게 내 할 말은 해도 될만큼의 나이는 먹었다. 그래서 참고만 있지도 누군가의 시선에 갇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 나 아닌 것으로 사랑받기 보다는 온전히 나로서 미움 받기를 택할 것이다. 어차피 나에 대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들이 내가 어떻게 한다고 변할 수 있는 차원의 것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 형성되는 차원의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의 고정관념에 따라 남을 판단할 뿐이니까. 나의 작은 장점 하나를 발견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나의 수많은 장점엔 눈을 감은 채 티끌만한 단점 하나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을 그리 대하곤 했으니까.


그러니, 사랑받기 위해 너무 애쓸 필요가 없다, 서로서로. 

사랑받기 위해 애쓸 때만큼 외로울 때는 없는 것이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유쾌한 나였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