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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Dec 01. 2016

파리는 위로를 하지 않아

우리는 가끔 잔혹동화를 그린다

땅 속을 누비던 지렁이는 문득 햇살이 들어오는 하나의 구멍을 발견하였다. 그 구멍을 통해 들어본 적 없던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느껴본 적 없던 따스함이 스며들었다. 지렁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구멍을 향해 자신의 몸을 움직여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지렁이는 따가운 햇살에 그만 눈을 뜰 수 없게 되었고, 몸을 촉촉하게 만들어주던 물기마저 햇살에 말라버리고 말았다. 지렁이는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파리 한마리가 지렁이에게 말을 걸었다.

"몸이 많이 불편해 보이는구나~"
"응... 내가 있기엔 너무 밝고, 덥구나... 몸에 묻은 흙마저 다 말라버려 버티기가 너무 힘이 들어...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난 이러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건가봐... 너무 춥고 무서워"
"내가 따뜻하게 너를 안아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몸이 점점 차가워지던 지렁이는 파리의 온기로 다시 따뜻해졌다. 파리는 입 안 가득 물을 머금고 와서는 지렁이의 몸에 뿌려주었다. 생기를 되찾은 지렁이는 파리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지렁이는 파리가 전해주었던 온기로 내내 따뜻해질 수 있었다.


모처럼 따사로운 가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주일에 교회 근처 공원에서 따스한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때, 문득 온 몸에 흙이 묻은 지렁이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 지렁이의 모습에서 왜 꼭 나의 모습을 보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지렁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갑자기 무지 큰 똥파리 한마리가 지렁이 곁에 날아와 앉았다.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던 지렁이는 이내 몸을 꿈틀거리며 파리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에 파리는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파리가 사뿐이 지렁이 위로 내려앉아 한참동안 지렁이 위에 있었다. 남편이 올 때까지, 다시 교회로 갈 때까지 계속 그 모양 그대로 있었다.


처음에 그 모습을 보고선 죽어가는 지렁이를 위로하며 마지막 순간은 따뜻할 수 있도록 파리가 그 몸을 덮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머리 속에는 따뜻한 동화 하나가 그려졌다. 그런데, 남편이 동물의 세계에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하길래 다시 다른 결말로 바꾸어 보았다.


어느 날, 지렁이는 바깥 세상이 궁금해졌다. 엉금엉금 온 몸으로 위로, 위로 올라왔지만, 그 곳에는 축축한 물기도 없었고, 따가운 햇살만이 내려 쬐고 있었다. 이내 목이 말랐고, 온 몸의 물기들이 말라 갔다.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흙투성이가 된 채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그때, 어떤 똥파리 한마리가 날아와 지렁이 곁에 앉았다.

"넌 왜 그렇게 된 거야?"
"난 그냥 바깥 세상이 궁금했을 뿐이야."
"그 호기심이 너를 죽게 만들었구나"
"너무 추워... 그래도 홀로 있지 않게 되어 다행이야~ 나를 좀 도와 주겠니? 나를 축축한 곳으로 좀 데려다 줄 수 있겠니?"
"나는 기다리고 있는 걸~ 네가 죽기까지 말이야. 네 몸에서 나오는 즙을 먹을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란다. 물론, 네가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야~"

똥파리는 위로를 모른다.
낯선 이에게서는 위로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도움이라는 것도 바라지 말아야 했다.

지렁이는 혼자 있을 때보다 파리가 내려앉은 지금이 더 춥다고 느꼈다.





우리는 함께 따뜻한 동화를 그려나갈 수도 있지만, 가끔 누구 한 사람이 잔혹한 동화의 한 줄을 그려버리곤 한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외면을, 배려가 필요한 순간에 배신을 던져버리는...


처음엔 따뜻한 동화로 시작되었는데, 내가 그려나가는 동화가 나만의 따뜻함으로 끝까지 따뜻하게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끔 나는 내가 너무 하찮은 인간으로서의 취급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것은 흡사 나의 동화 한 페이지가 누군가로 인해 처참히 구겨지거나 찢기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온 몸에 흙을 바른 채 어떤 구덩이 하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지렁이처럼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외면당할 때가 있다. 아니, 나의 시련이나 어려움 따위는 누군가에게 관심 밖에 있을 때가 많을 것이다. 


많은 순간, 위로가 필요한 많은 순간 우리는 옆의 누군가를 찾는다. 꼭 내가 필요할 때 누군가는 없다. 있어도 그들의 관심 안에 미처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가끔 남의 불행에 묘한 쾌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같은 이야기도 따뜻하게 이어 나갈수도, 비참한 결말로 끝맺을 수도 있다.


너의 동화도, 나의 동화도 내내 따뜻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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