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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Dec 19. 2016

최초의 꿈을 기억하세요?

내 꿈은 참 외로웠지요.

"유연성을 정말 타고났어... 혹시 그 전에 무용을 한 적이 있었니? 그냥 이렇게 썩히기엔 재능이 너무 아깝다. 엄마한테 가서 무용학원 꼭 보내달라고 해~"


초등학교 2학년 즈음, 학교 무용반에서 한참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나를 보며 무용선생님이 말씀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뻤던 나머지, 무용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무용선생님이 나보고 재능이 있대~ 무용학원 다녀보라는데~"


"어휴, 그게 돈이 얼마니..."



나의 맨 처음의 꿈은 발레리나였다. 그런데 나의 꿈은 점점 외로워졌다. 무용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그 인정의 말을 엄마에게 전했을 때, 엄마가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은 '돈'이었다. 그 이후로 발레리나가 되겠다거나, 무용을 시켜달라거나 조르지 않았고, 두 번 다시 입 밖으로 그 꿈을 꺼내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발레공연이 나오면, 발레리나들의 동작들을 보면서 집에서 따라하곤 했었고 또 어느 때는 펑펑 울기도 했었다. 예술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데, 차차리 그런 재능이나 주지 말 것이지, 그런 꿈이나 꾸게 하지나 말 것이지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다 나는 정말 좋아하는 것은 그냥 취미생활로 남겨 두자 생각했디. 어쩌면 진짜 직업이 된 후에는 그것이 아주 싫은 일이 돼버릴지도 모를 일이니. 이후에도 나는 학교 무용반에 계속 있었고, 집에서도 몸이 굳지 않도록 스트레칭을 꾸준히 했다. 대학 때는 댄스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었고, 졸업한 이후에도 춤을 배우러 다녔었다. 심지어 첫째, 둘째를 각각 임신했을 때도 발레를 하러 다녔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발레를 하러 간 클래스에서 발레 선생님은 나를 보며 자기가 여지껏 본 사람들 중에 유연성이 가장 뛰어난 사람같다고 했었다. 프로 무용수들도 이렇게 유연성을 타고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서... 강수진 못지 않은 발레리나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대한민국이 아까운 인재 하나를 놓쳤지 뭔가.


집에서 턴을 하고, 발레동작을 하고 있으면 첫째는 넋을 놓고 내 모습을 바라보고, 둘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신나서 꺄르륵 웃는다. 그러곤 가끔 나의 동작들을 따라하기도 한다. 딸을 낳으면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인 발레를 꼭 시켜야지 생각했었다. 엄마가 가진 재능을 타고난다면 발레리나를 시켜서 대리만족이나 해 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은 내게 딸을 허락하지 않았다. 뭐, 아들에게 발레를 시켜도 되긴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까지 개방적이거나 신식인 엄마는 아니다.


가끔 자기 앞에 놓인 어떤 장벽으로 꿈이 꺾일 때가 있다. 그 꿈이 자신에게 유일한 꿈일 때는 꿈이 아니라 나 자신이 꺾이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인건, 신은 이후에도 내게 여러 꿈들을 주었기에 내 존재가 무너지진 않았다.


나의 처음의 꿈, 발레리나.

그 꿈은 가난으로 인해 꺾여 버렸다. 그리고 많이 외로운 채 늘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유연하고 또 여전히 발레리나를 꿈 꾼다.


그리고 어디를 가면 꼭 발레리나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냥 가만히 걷고만 있는데도 "발레리나죠?"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엔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요즘은 그렇다고 대답할 때도 가끔 있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ㅎㅎ"


직업이 발레리나여야 발레리나로 불릴 수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잊지 않는다, 나의 처음의 꿈이자 여전한 꿈. 꿈을 꾸는 것보다 꿈을 놓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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