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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Dec 26. 2016

사랑해내는 능력

마음껏 사랑받기를, 사랑하기를 선택했었더라면

20대에 나는 누군가를 진득하니 사랑하는 것엔 영 소질이 없었다. 아니, 사랑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어떤 호기심과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과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했을 뿐. 일종의 정복욕만이 존재했던 것일지도... 그런 것들의 수명은 고작 100일을 넘기지 못했었다. 남자들은 그 즈음이 되면 나를 더 알고 싶어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알려고도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던 남자들이 3개월이 지나면 이젠 나를 좀 알아야겠다는 작정이나 한 것처럼 다들 나와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싶어했다. 개방적이지도 못했지만, 언제나 자신에 대해 꼭꼭 숨기기를 원했기에 그런 남자들의 마음과 태도에 그만 질려버려 다들 밀쳐내 버리고야 말았다. 심지어 너무 좋아했지만, 나의 과거와 나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알았을 때 실망하고 떠나버릴까봐 두려운 나머지 좋아하는 것과는 영 거리가 먼 말들과 행동들을 한 적도 있었다. 너무너무 좋아했는데 말이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과는 연애도, 결혼도 결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나는 늘 누군가를 밀쳐내기에 바빴다. 밀쳐내는 손길과 마음에 슬퍼하는 얼굴들과 목소리들과 모습들을, 또 마음들을 모두 외면한 채. 어떤 이는 절망감과 비통함에 죽겠다고도 했고, 또 어떤 이는 하루하루 술로 그 모든 것들을 버려내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나를 닮은 사람을 보며 슬픔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참 잔인하고도 무감각한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엔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나를 감추고 보호하기에만 바빴다. 그건 나를 알고 싶어하는데에 대한 일종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의지와는 무관한 적도 있었다. 아니 다시 말하면, 내 의지를 내가 꺾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졌지만, 나를 또 나의 지난 날을 털어놓고 말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나에겐 일평생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었다. 그런 것들을 알고자 하였으니, 궁금해 하였으니 나는 당연히 그들을 밀어내고 또 밀어내었다. 그것이 나에겐 정당한 일이었고, 또 정당한 대가였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 가운데 늘 있었던 사람에게나 가능한 어떤 기적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면서도 늘 사랑을 갈구했다. 늘 사랑에 대해 쓰곤 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떤 이의 이름은 떠올리려 애써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또 어떤 이는 가끔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들에게도 나는 그저 젊은 한 때의 떫은 감정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젊은 때에 사랑을, 사랑의 가치를, 그 비밀을 알아낸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며 또 대단한 행운이리라.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게 누구보다도 무거운 형벌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믿지 못했으면서, 그 모든 사랑들을 철저히 거부하고 내동댕이쳐 버렸으니까. 그 모든 사랑들을 내 마음에 담았더라면 나는 진작에 좀 더 따뜻하고 충만한 사람이 되었을텐데. 많은 시간 너무 많은 외로움의 순간 속으로 애써 나를 구겨 넣고 있었다. 구겨진 채로 너무 오랫동안을 지나오면서 점점 고약한 영혼만이 남게 되었다.


사랑 앞에선 나를 버려야, 나를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껏 사랑받기를, 사랑하기를 선택했었어야 했다.




사랑에 젖는 날


나의 어깨를 적시며
너만은 젖지 않도록

사랑은 
그렇게 좁디좁은 공간 아래
우산을 기울여
나를 적시는 일.

너의 영혼마저 젖어들지 않도록
그렇게 나를 너에게 기울이는 일.

겨우내 차가운 눈송이 품었다가
봄이 오면 꽃으로 눈송이 내어놓고
그렇게 오랜 시간 여유를 네 마음에
들여놓는 일.

너를 사랑하는 일.
너의 눈물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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