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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an 02. 2017

노랑눈이가 되어가는 사람들

대한민국엔 노랑눈이들이 넘쳐나

대학 때 교양국어 시간에 '유년의 뜰'이라는 소설을 접한 적이 있다. 이 소설에는 노랑눈이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노랑눈이는 걸신이 들린 듯 식탐이 많은 아이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그 시절에 받아야 할 부모와 가족의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해 외로운 노랑눈이는 먹는 것으로 그 외로움을 채우듯, 화장실에서도 먹고 오직 먹는 생각밖에 없는 아이로 변해간다. 아마 군인들이 화장실에서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이와 유사한 외로움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언젠가 알자지라 방송에서 현재 대한민국에 왜 먹방이 열풍인지에 대해 분석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고 한다. 아랍에서 우리나라의 먹방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놀랍기도 했는데, 그 분석한 이유라는 것들도 꽤 그럴듯 했다. 한마디로 그들이 분석한 결과는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도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또 이웃과 소통이 되지 않고 단절되어 있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외로운 나머지 먹는 것으로 그 외로움을 달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케이블의 어떤 방송에서 '조용한 식사'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출연자가 나와서 음식을 먹는데, 정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먹기만 한다. 가끔 어떤 한 마디를 할 때도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그야말로 조용히 식사를 한다. 나는 도대체 이런 프로그램을 누가 만들었을까, 이런 걸 누가 보기나 할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이 프로그램에 마침 채널이 멈추었는데, 정말 빠져들듯이 그걸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처음엔, 정말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안하고 먹기만 할까라는 호기심에서 보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출연자의 먹는 모습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이래서 먹방을 보는구나 느끼며 얼른 채널을 돌렸더랬다.



푸드포르노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먹는 모습을 마치 포르노를 훔쳐보듯이 훔쳐보고 있다. 이젠 먹는 것도 쌍방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면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경험한 사람들의 실망이 거듭되어 밥도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먹는 걸 훔쳐보며 대리만족하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은 아닐까...


마치 사람에, 친구에, 정에,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 자신의 주린 배가 아니라 주린 영혼을 채우듯 먹는 것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밥 한번 같이 먹는 것이 무엇이 그리 힘들어 밥 한번 먹자는 공수표만 날린 채 몇 년이 지나도 진짜로 만나서 밥 한번 같이 못 먹는 사이들이 넘쳐나게 된 것인지. 먹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브라운관에 나오는 사람과 함께 먹고 있는 것같은 착각에 빠져 그 사람이 먹는 것에 연신 침만 흘리고 그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에 진정 기뻐하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맛있게 먹어야지 다짐하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모면하고자 애를 쓰고, 이제는 그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혼밥이라는 말처럼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우리는 이제 정말 혼자들이 되려는 것일까...



가끔, 친한 동생이나 지인들에게 동네로 밥 먹으로 오라고, 밥을 사주겠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알았다고 대답은 하지만, 진짜로 그것이 만남으로 성사되는 일은 드물다. 사실 멀지 않은 동네에 살지만, 서로간의 마음은 밥 한번 같이 먹는 것도 힘들 만큼 먼 거리에 살고 있다. 얻어 먹는 밥이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움직일 만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이제 낭비이기까지 한 문화 속에 살면서 누군가와 밥을 먹는 것도 당연히 힘든 일이 되었다. 혹자는 혼자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쓰기도 하였지만,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다른 사람과 같이 밥을 먹었을 때보다 4배 이상의 우울감을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밥 먹는 것만큼이나 외로움도 일상이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 눈은 항상 아래로 향하고, 그것이 즐겁다고 주문 걸듯이 되뇌면서 나 자신조차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배고픔을 느끼는 뇌와 외로움을 느끼는 뇌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로움과 배고픔을 혼동하곤 한단다.


내 옆에, 당신 옆에 오늘도 노랑눈이들이 산다. 

외로워서 밥을 먹고, 밥을 먹으며 또 외로운 오늘날의 노랑눈이들이...

자신이 지금 외로운 것인지, 배고픈 것인지도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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