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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an 07. 2017

행복의 조각

오늘도 그 하나를 집어든다

햇살 한 조각, 바람 한 조각을 양손에 집어 든다. 문득 두 손 가득 고마운 마음이 내려앉는다. 힘들고 모진 인생을 살아왔지만, 햇살 한 조각에 바람 한 조각을 더하니 세상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느껴지고, 그런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당찬 모습으로 살아가게 해 주어 고맙다고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에게 외치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문득 내게 주어진 것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손바닥 안에 내려앉은 햇살과 바람은 행복이었나 보다.


가끔, 우리의 눈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가 더 있었더라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하나의 눈은 손끝에 달려 있어 좀 더 쿨하고 또 좀 더 따뜻하게, 미처 볼 수 없어 놓쳤던 순간들과 마음들을 손바닥 위에 내려놓고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당연하게만 다가왔던 일상들을 더 고맙게 여기고, 당연하다 여겼던 따뜻한 마음들을 더 많이 느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우리는 가끔 멀쩡한 두 눈을 가졌지만 내 주위에 있는 많은 것들을, 또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너무 많다. 현재 주어진 시간들이 힘들어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미처 보지 못할 때가 많고, 내 마음이 어려워 나의 영혼의 반쪽을 나눠 짊어진 사람의 어려움 앞에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나의 앞길만 보느라 주위에 누가 쓰러져 울고 있는지 돌아보지 못할 때도 많다. 


파란 하늘의 구름은 어떻게 생겼는지, 따뜻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어떻게 춤을 추는지,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은 얼마나 의젓하고 굳건한지... 어렸을 때는 그 모든 것들을 느끼면서 살았었는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놓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어른이 된 이후에 아름다움이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 장님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이다. 


내 눈에 담아놓았던 많은 아름다움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출 때에 내 안에 몹시도 차가운 마음들이 드러눕는 것을 느낀다. 깔깔거리던 웃음소리의 자리에 화내는 소리가 자리 잡고, 미소 짓는 두 눈에 무심한 시선이 놓일 때의 서늘했던 감각과 이별하고 싶어 질 때가 문득 잦아든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 한가운데에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어떤 것에도 기죽지 않는 푸른 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과 마주하고 싶어진다. 



남편과 함께 길을 건너려고 건널목 앞에 서 있던 어느 날, 검은 색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가 안절부절 못하고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사람 같았다. 


"도와 드릴까요?"


"네? 네... 원래 자원봉사자와 만나기로 했는데 오지 않고 있어서... 제가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요. 집에 다시 가야하는데, 혼자서는 못 가겠어요..."


"저희가 모셔다 드릴게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오기 전, 우리 집 근처에는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그는 그 시장의 후미진 골목 한 쪽에 자리한 허름한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고 하였다. 한번씩 자원봉사자가 들러서 돌봐준다고 했다. 50대가 훌쩍 넘은 나이 같았는데, 가족도 없이  방 한 칸이 다인 그 곳에서 가끔 들르는 자원봉사자만이 세상으로 자기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다. 불편한 몸으로, 한 톨의 해도 들지 않는 곳에서 그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도 받아주는 사람 없이 처음 만나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는 숨을 쉬었을까.



몇 년 전 나는 희귀병이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선 병원에서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특히, 그 병은 잘못하면 시각을 잃게도 할 수 있어 눈 검사를 꼭 해야한다고 했다. 눈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고정시키는 기구로 내 눈은 고정된 채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그 검사를 받는 동안 눈은 찢어질 듯이 아팠고, 내가 어쩌다 이런 검사를 받고 있는지, 이게 현실이긴 한 것인지 눈물도 나지 않았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아야 눈물도 흘릴 수 있는 일이었다.


그 희귀병은 진단이 어려워 정확하게 이 병이다 진단하기도 힘든 병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병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위, 대장, 눈 어떤 곳을 검사를 해도 그 병이라고 진단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으니... 느낌에도 나는 그 병이, 그 희귀병에 걸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두려움이 밀려들 때가 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면서 그 동안 볼 수 있었던 것을 볼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고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내게 주어진 당연한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지나치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모자라는 축복이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공존하는 ‘바람의 거리’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신비로운 공기를 한껏 누렸던 날, 가족과 함께 있는 그 시간이, 내가 볼 수 있는 그 아름다운 것들이, 여리고 순한 시간들이 눈물겹도록 감격스러웠다. 그 모든 것들을 눈에 새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이 밀려들었다. 일상은 따뜻한 불빛으로 가득했고, 그 불빛 가운데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왔던 무수히 많은 삶의 조각들과 그저 나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생활의 불편함이고 지독히도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기며, 행복을 다시 집어 들었다. 


우리의 삶은 더없이 자잘한 것으로 채워져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잘한 것들이 모여 나를 이룰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래지고 닳아지는 삶의 흔적들이 수많은 감격들을 내 앞에 드러내 놓을 것이다. 나와 가족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아름다움들이 너울너울 웃음 짓고 있다. 그 웃음을 보며 나도 따라 웃는다.


수묵화 같은 하늘 아래 내가 있다. 사소한 행복의 조각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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