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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an 12. 2017

그때는 친구였고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려면 한 쪽 눈을 감아야 하고, 친구를 오래토록 유지하려면 두 눈을 다 감아야 한다고 했던가. 친구는 만들기는 어려워도 잃기엔 참 쉬운 존재다. 그러므로 두 눈을 감지 않고 한 쪽 눈을 뜬 채로 있는다든지, 실눈이라고 뜬 채로 있었다가는 이내 친구의 모습에서 싫은 그것들이 생겨나고 그것으로 인해 싸우게도 되고 그러다 결국 언제 우리가 친구였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되짚어봐야할 일이 생겨버릴지도 모른다.




"옛날에 친했던 친구가 다 무슨 소용이야. 지금 친하지 않은데. 지금 곁에 없는데. 지금 옆에 있는 친구가 친구야. 옛날 친구 다 필요 없어."


어느 날, J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이 약간은 슬펐다. 그런 말을 하는 J가 무척 실망스러웠다. 옆에 있는 친구만이 친구라는 말인가. 지금 옆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지금 옆에서 도움을 주고, 지금 옆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친구만이...


초등학교 때부터 20대까지 J와 나는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 J는 우리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수시로 서로의 집에 가서 놀았고, 눈이 펑펑 오는 어느 날 쌀포대 하나 들고선 눈썰매를 타다가 옷이 홀딱 젖었는데도 추운지 모르고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밤이 늦도록 썰매를 타고 또 타고 했었더랬다. 대학 때까지 일주일에 한번은 만나 영화를 보고, 홍대 거리를 걷기도 했으며, 압구정에 가서는 촌놈들이라고 얼굴에 써 있는 걸 누가 볼까봐 괜스레 같이 주눅들었으면서도 그런 우리 모습이 웃겨서 깔깔거리기도 했었다. 


죽음을 앞둔 우리 아빠를 찾아와 아빠라고 불러주던 친구였다. J가 이혼을 앞둔 어느 시점에 나의 도움이 절실했고 나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조언뿐만 아니라 법률문제 등 현실적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주기도 했었다. 


어느 날은 우리 가족이 경주로 기차를 타고 놀러갈 때 J도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우리 둘을 보며 쌍둥이냐고 할 정도로 우리 둘은 많이 닮아 있었다. 그 만큼 서로의 얼굴을 많이 보았고(물론 그 친구가 더 예뻐서 마음 한 구석에 상대의 미모에 대한 질투심을 내가 더 많이 느끼는 쪽이었겠지만), 많이 친했었고, 한때는 자매같던 친구였는데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우리도, 친구도 아니다.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한때 그런 친구가 있었지 정도였고, 이 글을 쓰면서 우리가 그랬었구나 기억을 더듬는 정도의 존재밖에 되지 않았다.



교회 동기들끼리 정말 친했었다. 우리 동기들이 교회 최강 동기였을 정도로 인원수도 많았지만 단합도 잘 되었고, 교회 내에서 인정도 많이 받았었다. 우리들은 만나면 즐거웠고 그런 즐거움들을 어느 산 자락에 타입캡슐에 넣어 보관하기도 했었다. 이 다음에 모두 결혼하면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파보기로 약속하고선. 건물 하나 지어서 그 곳에서 우리 모두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우리들은 함께 하는 시간들도 많았고 만나면 그렇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기 시작하고, 각자의 진로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그때의 날들은 그냥 즐거웠던 추억의 한 자락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많이 있지만 교회에서 얼굴을 봐도 그냥 스치듯 인사를 나누는 사이들이 되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너무 보고 싶다고.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그리 멀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을 했지만, 나는 너무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보고 싶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냥 그 친구는 추억 속에 한 사람일 뿐이었다. J의 말이 떠오른다. 옛날 친구가 다 무슨 소용이야. 지금 옆에 없는데. 나도 그런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나역시도 정도 뭣도 없는, 물기라고는 전혀 없는 건조한 인간이 되어 버린 걸까. 나는 사실, 그녀와 만나 과연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그녀와의 만남이 기대가 되지 않았다. 대학 때 이후로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그 공백의 시간을 우리가 과연 메꿀 수 있을까하는 불편함들이 밀려왔다.


예전에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면서 그 할머니들이 정말 부러웠었다. 그녀들에겐 서로 자신의 것들을 또 서로의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옆에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일인것마냥 달려와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늙은 이들의 낡지 않은 그 우정이 부러웠다. 내가 늙으면 내 곁에 저런 친구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상하게도 그것이 서러워, 아직 오지도 않은 그 미래가 서러워 울었었다. 어쩌면 그 울음은 오지도 않은 미래가 서러웠던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의 상태가 서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날에 많은 것들을 두고 왔다. 그리고 지난 날에 두고 왔어야 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왔다.


그것이, 지금 내 마음 한 곳이 뚫린 이유이리라.



https://www.instagram.com/lampy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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