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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ul 02. 2017

감정이라는 벽

허물든, 쌓든 그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마음이 하류로, 하류로 떠내려가더니  물에 타면 스르륵 없어져버리는 어떤 가루와 같은 정신력이 이내 들어서버릴 때가 있다. 


벽이 있어요.


그 벽은 내가 만든 것일까, 그녀가 만든 것일까.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니 나와의 사이에서 벽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느낌과 마음을 언어화시키고 나아가 존재화시킬 필요는 없다.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느꼈다면 나 역시도 상대에게 불편한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 벽이 상대의 잘못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그 말을 했든, 좀 더 벽이 없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든(말하는 분위기 상으로 후자는 아니었을 것이나),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든 영원히 지속되는 감정이든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그 느낌은, 그 감정은 본인의 것이지 상대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감정을 혼자 감당하기 벅차기 때문에, 또 상대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려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나의 문제를 나만의 문제로 가만히 놓아두지 못하는 멋대가리 없는 인간을 볼 때가 있다.




누군가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오늘은 정말 내가 너무 바보처럼 버벅거렸다고 왜 그렇게 말을 똑바로 못했을까 느끼는 날에도 사람들은 나를 시크하다고, 똑부러진다고 평가하는 걸 보며 나의 이미지라는 것과 나의 모습, 목소리에는 결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뭔가가 있나보다 느꼈던 적이 있다.


가끔 대화 중에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방황하는 상대의 눈동자를 보면서 내가 무서운가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니. 사람들에게 나란 사람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인가보다, 어떻게 하면 좀더 편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더니, 내 행동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나는 물에 쉬이 녹아 없어지는 가루가 된 것같은 느낌이었다. 늘 그런 고민을 안고 있던 내게 벽을 느낀다는 누군가의 말은 약간의 좌절감으로 다가왔고, 쓸데없는 말을 내뱉은 그녀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했다. 상대가 들어 좋지 않은 말은 쓸데없을 뿐만 아니라, 그냥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 그리고 솔직함이란 미명 아래 내뱉는 말은 얼마나 뾰족한지. 사실, 그녀는 웃으면서 그 얘기를 했는데,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더 뾰족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몇 번 본 적 없는 어떤 동생이 나한테 쉽게 반말을 하며 재잘대는 것을 보고선 어쩌면 그 벽이라 불리는 것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만든 것이라는 안도감과 확신마저 들었다. 나 역시도 내게 편히 말하는 사람에겐 내 평소의 모습대로 자연스레 대하고 있었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겐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 


좀 유연한 사람이 돼봐요~


자신을 긍정적이라 규정한 그녀는 나의 유연하지 못한 일처리방식에 어쩌면 벽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원리원칙주의자인데다, 이상주의자이며, 완벽주의자이기까지 하니. 그녀에게 벽을 만들어낼 이유는 충분했던 거다. 하지만 내게 그녀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이었고, 나는 중심을 지킨 사람이었다. 이렇듯 자기자신에게는 관대한 잣대로 남에게는 지극히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규정하는 것이 갖가지 방어기제로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자를 거 딱 자르고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않고, 일 정말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똑같은 모습을 보고서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걸 보며, 어떤 이를 평가할 때 객관적인 잣대라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유연하다던 그녀는 나를 평가하는데는 결코 유연하지 못했으며,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을 뿐이니.


그녀가 세우고 만든 벽은 결코 내가 허물어줄 수 없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나에게 벽을 쌓고, 누군가는허물없이 나에게 다가오니까.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그녀를 향해 벽을 쌓기 시작했다. 이 역시 철저히 나의 몫이지 그녀의 몫이 아니다. 벽을 허물든, 더욱 더 견고하게 쌓든 그건 내 안에서 해결해야 할 나의 문제이고 나의 감정일 뿐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느낌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가끔은 바람에 흩날리는 신문지 조각같기도 하다. 오늘은 좋다가도 내일은 싫어질 수 있고, 끔찍하게 좋던 것들이 끔찍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일관성 없는 감정들에 의지에 나의 말들을 탄생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은 뱉어 맛이 아니라, 침묵할 때 비로소 맛있어 지는 것이니. 그리고 그런 감정의 배설들이 결코 좋은 결과가 되어 돌아오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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