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구멍이 뚫렸다
사람의 몸과 몸 사이의 거리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와 비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와도 스킨십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커왔고, 누군가와 친밀한 스킨십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엄마의 품은 나에겐 죽은 자들의 무덤과도 같았고, 다른 이들과의 스킨십 역시도 정체불명의 불안함의 근원이기만 했다.
내 몸은 나만의 것이라 누가 함부로 만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허락된 스킨십은 오직 그들에게만 마음의 문을 열 것이라는 어떤 다짐과도 같은 것이기도 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것이 중요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나를 예뻐하며 하는 스킨십이라도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내가 아주 의지하는 사이가 아니면, 내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사람이 아니면 그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수다와도 같았다.
그래, 나는 부서졌다. 그리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버렸다. 마치 넓디 넓은 바다에 던져진 구멍 난 그물처럼. 그 구멍으로는 온갖 진흙들만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나보다 연배가 많은 어떤 선생님이 - 물론 여자다 - 나를 볼 때마다 내가 예쁘다고 갑자기 내 등을 쓰다듬는다거나 내 머리를 만지는 일이 있었다. 나는 순간, 극도로 예민해지고, 불안해졌으며, 패닉에 빠져들고 있었다. 급기야 화가 나서 그 화를 참느라 남편과 연신 카톡만 주고 받고 있었다. 불안으로부터 나를 잠재워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으니까.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그래도 나에겐 체면이라는 것과 위신이라는 것이 딱딱하게 굳어진 거북이 등껍데기처럼 붙어 있지 않겠나.
그 분에게는 예쁘다는 최상의 표현 방법이었고, 나를 친근히 대하는 몸짓과 손길이었으나, 나에겐 그저 괴물 하나가 나를 훑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가 여자에게 스킨십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기분 나빠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어떤 저주와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와도 완전히 친밀해질 수 없는 어떤 저주. 그것은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손길이 다정하면 할수록 내 마음은 땅에 떨어졌다. 그러니 나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성 안에서 나만의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다만 그 괴물은 타인이 아닌 나를 공격하도록 시스템화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의 몸와 몸 사이의 거리가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말해준다면 좋겠다. 어떤 소통의 통로들이 결코 거세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사람들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들킨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싼 불편함들을. 뜨거운, 그리고 차가운 소금 한 움큼을 켜켜이 입에다 들이붙고선 사람들을 향해 내뱉는다. 다가오지 마세요, 나에게.
나는 결코 말랑해질 수 없어요.
라고 외치면서도 실상은 내가 가둔 나를, 철저히 잠겨져 꽁꽁 틀어박힌 나를 꺼내달라고 목구멍이 아플 때까지 누군가에게 빌고 싶은 것일지도...